오늘 오전, 꽁꽁 언 바다에 다녀왔다. 하얀 포말이 뭉게뭉게 얼어버린 바다의 바람은 몹시 사납다. 할퀴듯 훑고 간 바람에도 딸아이는 무어가 그리 좋은지 뜨거운 햇살에 노곤노곤 녹아내리는 포말 얼음을 손바닥보다 작은 발로 깡깡 짓이겨 밟는다.
손끝과 귀 끝이 차가워져도, 즐거우니 그만이다. 모래사장에서 제 아빠와 달리기 시합을 하다가 아빠 뒤로 한참 처지니 한다는 말이 "혼자 아니야. 같이 뛰어."다.
또 한 번 네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깨친다.
아이와 한참을 노는 중, 뒤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집에 와서 사진을 받아 보는데 웬걸.
구름 실오라기 하나 없는 하늘에 명도 높은 햇빛이 비추고 너른 갯벌 너머의 외로운 무인도가 하나 콕 박힌 풍경 앞으로 세상의 작은 점처럼 서있는 나와 딸아이가 있다. 발갛게 물든 딸아이의 손끝이 보기 안쓰러워 추운 손이언정 맞잡고 얼음 위로 서있는 우리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고백한다.
너는 정말 내 전부라고. 전부라는 말이 무척 진부하지만, 사랑을 노래하는 것들은 모두 진부하지 않으니. 그러니 결국 내 사랑도 진부한 가사로 읊어야 제 맛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아,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아가야. 세상의 끝에 서야만 하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 알토란 같은 손을 붙들고 있다면 위태롭지만 버틸 수 있겠다, 그리 생각했다.
꼭 이런 감상을 할 때쯤이면, 엄마가 생각난다.
그녀 앞에 무수히 많은 세상의 끝이 있었다는 걸 익히 들어 안다.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녀가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끝내 오늘이라는 시간을 맞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아기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부한 전부가 매 순간 그녀를 구했으리라.
그래, 그녀의 아기는 다시 아기를 낳아 그 아기로부터 다시 위로받는 찬란한 굴레 속에 나의 하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