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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달 Dec 30. 2021

스쳐간 이들에게  

24살에 첫 발령을 받아 어느덧 6번째 아이들을 보낸다. 23명을 평균으로 잡으면 스쳐간 아이들이 대략 138명이다. 


예전에 내가 정년퇴직을 한다면 몇 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를 어렴풋이 계산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더라. 


사실, 내가 이 아이를 1년 동안 바꿔보겠다는 야심 찬 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만 이 직업을 생각하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역시 숭고한 노동인 건 누구든 인정해주어야 하는 사실이지만, 글쎄 현장에 있는 많은 선생님들은 우리가 노동 그 이상의 것을 등에 지고 있음을 안다. 


등에 진 이것은 책임이다. 안전하고 즐거운 하루를 살게 해 주고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책임. 적어도 교과서에 나온 지식과 가치는 기본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 더 나아가 이왕이면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책임. 


하루하루를 책임에 허덕이다 보니, 1년을 바라보는 큰 눈길은 점차 잊히고 근시안을 가진 하루살이처럼 살았지만 시간은 성실하게도 쌓였고 그렇게 6년이 흘렀다. 


마음은 주어도 주어도 어디서 솟아나는지, 매년 나를 만난 아이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퍼주었다. 


유독 그 마음을 많이 가져간 이도 있고, 더 주지 못해 아쉬운 이도 있지만 적어도 남에게 나눠준 이 마음이 헛되지는 않았으리라. 


1학년 때 만났던 아이가 4학년이 된 지금도 매일 같이 교실에 찾아오고, 25살 때 만났던 아이 하나는 때가 되면 성실하게 연락을 해준다. 임신을 해서 배가 잔뜩 부른 채로 가르쳤던 아이들은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와 종알종알 떠들고, 유독 나를 잘 따랐던 남자아이 하나가 어머니와 함께 편지를 보내주는 것. 


나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래. 주먹을 펴 보니 남은 게 없어 보였지만 기어코 손금 사이사이에 남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내년에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새로운 마음을 주며, 여느 때와 같은 책임으로 또 하루하루를 쌓을 테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예전을 돌아보고, 그러다 기운이 나면 내일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또 오늘처럼, 1년을 오롯이 보낸 아이들과 이별하며 이유 모를 먹먹함과 답답함에 커피나 홀짝이며 앉아 있을 것이다. 


나를 스쳐간 이들에게 반성하며, 또한 기대한다. 


내가 준 것이 보잘것없어도 무엇 하나 찾아내어 품고 가길. 너희들 앞에 언제나 곧고 바른 길만 있기를. 어쩌다 굽이치는 길과 우거진 숲길을 만나더라도 부디 의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이게 너희를 올려 보내는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너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간다. 추운 겨울의 복도가 유난히 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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