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한다. 잊을 수 있다는 걸 축복이라고도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잊었기에, 망각했기에 나는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둘째를 임신하며 ‘아, 이게 임신이었지, 참.’ 한다는 소리다.
첫째 때 지겹게 먹덧을 했었다. 속이 비면 눈앞이 하얘지고 당장 뭐라고 속에 넣어야 제정신이 돌아오곤 했다.
나의 말초에 이르는 모든 감각이 오직 음식에 꽂혀있던 시절. 임신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4kg 정도 체중이 증가하자 담당선생님께서는
체중 증가가 너무 빠르다고 조언하시기도 했었다.
중기로 넘어가니 좀 나아질 것도 같았건만 그놈에 메슥거림 도저히 괜찮아지질 않고, 배가 불러오니 뭘 해도 불편했다.
차를 타고 오래 다니지도 못했다. 편도 한 시간 거리가 최대. 멀미가 주요 원인이었다.
막달로 가니 속 쓰림에 쓴 물이 올라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 해도 힘들었던 때를 지나고 드디어 첫 아이를 출산했었다.
출산했을 때 나의 감상은 아주 단순했다.
‘아, 끝이다.’
이 해방감이 출산과 첫 만남에 대한 기쁨을 앞섰다.
훗날 나는 남편과 이야기하며 그 생각이 너무 미안하다고, 이렇게 예쁠 줄 알았으면 더 좋은 생각을 해줄 걸 그랬다고 후회하곤 했다.
그런데 다시 임신을 하고 나니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난 나를 다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달랑 임신 7주의 임산부. 먹덧인 듯 체덧인듯한 증상. 소화불량에 복부팽만감. 저녁만 되면 증상이 더욱 심해져 첫째를 돌봐주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니 ‘이게 맞나?’하는 의문이 매일 같이 찾아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네 살 터울이나 되는 둘째를 가져버린 건지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안 그래도 피가 자주 비쳐 절박유산의 가능성이 있어 지금 병가 중인 상황인데도 나는 뱃속의 아이보다 내 몸의 보전이 더 시급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삶의 질이 급속도로 하락했다.
그래. 임신이란 게 이거였지.
이걸 정녕 또 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참 멍청했구나.
이런 모진 생각을 하는 엄마 뱃속에서도 둘째는 또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루한 입덧에 첫째를 향한 짜증이 늘어가자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입덧약 처방을 위해 찾아간 오전의 산부인과에서 나는 더 강해진 둘째 녀석을 만났다.
지난주보다 키가 두 배나 컸고, 이 녀석이 머리에 엉덩이까지 생겼다. 지난주에는 제법 비루했던 심장소리가 오늘은 빠르고 강해졌다.
녀석은 강하게 뛰고 있었다.
엄마. 나 보세요. 나 이만큼이나 자랐어요.
아무 말 없이, 둘째의 담당 선생님께서는 오래도록 둘째 녀석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셨다.
탯줄이 될 부분도 확인시켜 주셨다. 희미하게 녀석과 내가 아주 짧고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이 되고 있었다.
이런 진귀한 경험은 내가 오로지 여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 안에서 사람이 자란다.
모든 생명은 유기적이다.
‘나는 화초를 선물해 주는 게 제일 싫다. 살아있는 것이라 함부로 죽이지도 못하겠고 결국 열심히 키우게 되지 않느냐.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던 강낭콩 화분도
나는 끝을 볼 때까지 키웠었다. 결국 강낭콩을 맺어 그 콩으로 밥을 해 먹어야 비로소 끝이 났다. 생명이란 건 이렇게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치 그간의 내 속을 읽은 듯 담당 선생님께서 한 말씀을 해 주신다.
반성했다. 며칠 엽산 챙겨 먹기를 까먹었던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이 차갑게 스쳐간다.
병원을 나오며 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부지런한 오전이었다. 입덧약을 처방받고 근처에 있는 보건소에 가서 임산부 등록도 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밀크티도 가장 큰 사이즈로 한 잔 사서 쪽쪽 빨아먹었다.
며칠 전부터 감기를 앓고 있는 첫째를 일찍 하원시켜 데려왔다.
어제 아이가 먹고 싶다던 고구마도 사고, 나를 위한 토마토도 샀다.
햇살이 좋았다.
그래. 잘 될 것이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심장도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심장도
내 아이의 절반을 만들어준 나의 반려도
다시 임신을 한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