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입덧약을 먹기 시작했다.
첫째 때는 먹으려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입덧약이었다.
첫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먹덧이다.
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소화불량이 동반된 먹덧이라는 것.
이게 얼마나 굉장한 녀석이었는고 하니, 안 그래도 하루종일 숙취처럼 울렁거리는 속에 쉴 새 없이 먹을 걸 집어넣는데 문제는 그게 전혀 소화가 안 됐다.
‘소화가 안된다.’
이게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환장 요소였다.
적체된 음식물이 화려한 자기주장쇼를 펼치는 건 주로 저녁 식사 전후였다.
명치부터 아랫배까지 빵빵하게 들어찬 가스에 허리를 펴는 건 고사하고 눕거나 앉아 있는 것도 괴로웠다.
그렇다고 방귀는 잘 나오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문제는 이렇게 배가 빵빵한 와중에도 먹는 걸 쉬면 다시금 울렁거림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더하기, 첫째 때는 먹덧이던 소화불량이던 내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집 어디서든 쉴 수 있었다. 잘 수 있었고, 퇴근 후에는 마음대로 늘어질 수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단 뜻이다. 내가 내가 아닌 몸상태에 첫째를 먹이고, 첫째와 놀아주고, 첫째를 씻겨야 한다. 부부 둘 중 하나는 집안일을 해야만 하고.
비극이다.
파국이다.
이렇게는 안된다.
그리하여 나는 다짐하게 된다. 입덧약을 먹어야겠노라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소화불량에 입덧약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던데 다행히 나는 아니었다.
입덧약을 먹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울렁거림과 소화불량이 진정되었다. 물론 먹덧은 그대로 있다. 모든 증상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150 정도였던 증세가 85 정도로 완화되는 느낌이다. 토덧으로 예를 들자면 10번 토할 거 6번 정도로 주는 느낌이란다.
그리고 약발이 떨어지는 저녁 9시 무렵부터는 그냥 콱 자버려야지 안 되겠다 싶은 정도의 입덧이 다시 몰려온다.
그럴 때쯤 내일을 위해 입덧약 두 알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그래야 내일 다시 살 수 있다.
한 달에 4만 4천 원으로 얻은 시한부 행복인 것이다.
문제라면 졸음이다. 아침에 밥을 먹고 나면 춘곤증마냥 온몸이 나른해져서 두 시간은 너끈히 잘 수 있을 정도로 졸음이 밀려왔다.
혹자들에 의하면 하루종일 자는 사람도 있다더라.
물론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오늘 참아봤더니 참아지더라! 다행이다. 병가가 끝나도 출근은 할 수 있겠다.
아, 참으로 고된 삶이 아닌가. 입덧 걱정에, 첫째 걱정에, 유산끼 있는 둘째 걱정에, 출근 걱정까지 참 다양한 분야의 걱정을 고루고루 해야 한다.
나만 그러냐면 또 그건 아니다. 우리 남편은 이보다 더 할 인간이다. 아마 저기에 아내 걱정과 재테크 걱정까지 추가될 것.
잠깐 우리 남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첫째를 출산한 후 밤낮으로 애 보는 나도 멀쩡한데 우리 남편이 임파선염이 왔었다.
임파선염이 피곤하면 오는 병이란다. 그는 당시 몹시 피곤했었던 것이다.
퇴근 후 혼자 집안일도 다하면서 언제 저 멘탈 약한 아내가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계속 안고 살았을 그다.
내가 참 존경하는 사람.
그렇게 옷에 휴지를 넣고 빨래를 돌려도 뭐라 화내지 않는 생부처가 내 남편이다.
그 덕분에 둘째도 결심할 수 있었다.
혼자 키운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 않는 사람.
육아라는 건 부부가 함께 하는 것임을 언제나 증명하는 사람.
입덧약을 먹어야겠다는 나를 지지하며 졸음과 입덧 같은 내 몸의 문제에 늘 관심을 기울여주는 그 덕분에
나는 이 길고 지루한 임신을 또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천천히, 꾸준히, 다시 이 과정을 복습하며 우리 셋 똘똘 뭉쳐 출산의 길을 걸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