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달 Mar 15. 2024

둘째를 낳고 100일 경의 기록

우리 둘째가 카페에서 주무시는 동안, 100일간 머리에 담아 뒀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마저도 얼마나 잘지 알 수 없기에 내 손가락은 화면을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고 있다.


육아는 불확실의 연속이다.


아이가 나이 듦에 따라 불확실의 가능성이 낮아지기에 점차 (육체적으로) 편해지고는 하는데 불확실성이 영 사라지는 건 아니다.


첫째의 경우는 요즘 유치원 가기 싫다는 말을 하원부터 잠들기 전까지 거짓말 안 보태고 50번 정도 한다.


참으로 성실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둘째의 경우는 어제 6시까지 죽 자주 었다. 몹시 박수! 하지만 문제라면 내일은 새벽 2시부터 빽빽 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주는 대로 다 먹더니, 내일은 입에 젖병만 가져가도 혀로 밀어내기 바쁠 수 있다.


뭐, 불확실의 요소는 이 아이의 24시간 통째로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첫째 때는 그걸 몰라서, 아니 알지라도 경험이 전무했으므로 육아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단적으로, 나는 여태껏 우리 첫째가 신생아였던 시절 살던 집의 안방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


아직도 우는 아이를 안고 어르던 늦여름의 그 순간, 같은 교직에 있던 유명한 랩 하는 친구가 경기도교육청 광고에 나오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육아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란 건 큰 선물이었다.


둘째를 키우는 나는 굽어지던 등과 어깨도, 운동할 짬이 없어 아이가 노는 그 짧은 10분 동안 후다닥 해치우던 스트레칭도, 늘어진 배도, 무슨 옷을 입어도 아줌마 같던 모습도, 화장기 없는 칙칙한 얼굴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예전으로 비슷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이미 포기가 편해진 사람이라서 그렇다.


여유로운 식사시간을, 문을 닫고 용변을 보거나 샤워를 하는 것을, 머리를 하루에 두 번 감는 것을, 친구들을 만나 밤에 술 한 잔 하는 것을, 그 외에도 참 많은 것을 포기했다.


포기라. 포기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매정할까.


첫째 돌까지의 시간은 더는 그것들이 전처럼 자유롭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포기는 관성이라 나는 더 이상 그리 힘들지는 않다.


둘째를 낳고 포기한 것이 있다면 오롯이 첫째에게 할애하던 나의 시간이다.


전처럼 그리 아프지는 않다. 아프긴 하지만 금방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론, 잠든 첫째의 얼굴과 그날 찍었던 사진을 보며 글썽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자란 나의 품에서 아이 둘이 크고 있다.


그 품이 온 세상인양 말이다.


모자라도 괜찮다고 아이들이 말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첫째가 최근 나에게 했던 말을 적으며 글을 갈무리해 본다.


"유치원에서 잘 지냈어?"


"응! 엄마는 (뒷짐을 지며) 오늘 동생 돌보는 일 잘했어?"


다정한 네 말이 나의 신이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 그 발걸음 뿐이라 미안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