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시간 혼자 살아온 할머니를 생각했다. 경로당에 다니고, 밭에 나가 일하고, 친구들을 사귀며 지내는 할머니. 할머니는 외롭지 않을까. 할머니는 대체 누구에게 의지하고 사는 걸까.
“밝은 밤 “중 , 최은영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작별한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란 것도 아니고 오랜 추억을 지닌 것도 아니다. 다만 엄마의 친정이자, 복작복작하고 또래가 많은 그곳이 좋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니 할머니 집에 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아이가 뛰어놀기 좋았고 혼자인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고 싶었다.
아이가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꽃이 필 때 우리는 그 곳에 도착했다. 부엌 앞에 웅크리고 밥을 먹던 할머니의 등을 감쌌다. 나의 손길에 한번 놀라고 깜찍한 증손녀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러고는 마구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넉살 좋은 남편은 몸짓으로 최선을 다해 반응했다. 내가 살포시 그에게 말했다.
“다 리액션 안 해도 돼. 이제 했던 얘기 계속 반복이야”.
파란 지붕 집 아들은 장가도 안 가고 사고를 쳐서 부모의 속이 뭉그러진다는 이야기. 이장님이 나를 알뜰살뜰 챙기는데 너희들이 온다는 소식에 기뻤다는 이야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점심상을 차렸다.
밥보다 더 많아 보이는 새까만 콩이 나를 반겼다. 미리 해치우려고 잔뜩 콩부터 입에 밀어 넣었던 나와 달리 아이는 콩부터 쏙쏙 골라 먹었다. 웃음이 피어난 할머니는 불편한 손으로 손녀를 위해 조기를 발랐다.
남편은 돌아가신 자기 할머니가 생각난다며 하루 만 더 자고 가자고 했다. 청력이 떨어져 소리에 둔감하고 손녀사위를 천천히 뜯어볼 여력도 없는 노인은 이곳을 매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던 날, 할머니는 눈을 비비더니 이내 눈물을 보였다. 헛헛하지 않게 자식과 손주들이 번갈아 가며 놀러 왔지만 역시나 부족한 모양이었다. 겨우 지팡이에 몸을 기대어 우리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할머니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스산한 기분은 왠지 할머니와 작별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그 뒤로 마지막 순간이 오게 된다면 집에서 가족 모두가 모여 인사를 나누는 그림을 상상했다. 하지만 상상과 반대로 아무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병원을 교대로 오가던 삼촌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할머니는 영원히 깨지 않는 잠이 들었다.
장례식장에 우리 할머니와 먼 친척분이 오셨다. 혼자가 된 두 사람은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친척 할머니의 흐느끼는 울음 속에 터져 나오는 말이 들렸다.
“아이고, 우리 성님. 이렇게 먼저 가셔서 나 우짜요. 이렇게 나 두고 가면 우짠디요. 내가 기다렸는데. 우리 성님. 얼굴도 못 보고 가셨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사진첩에는 구부러진 주름 사이로 볼록한 사마귀를 꾹 누르며 장난치는 아이와 할머니가 담겨 있다. 그리고 나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아이 낳은 지 80일 즈음, 부기가 빠지지 않아 고생하던 내가 1년 뒤 찾아갔을 때 놀라시면서 말했다.
“그때는 살이 퉁퉁 했시야. 다른 사람이 와서 얼마나 놀랬는가 몰라. 지금은 쏙 빠져 부렀네.”
조곤조곤 팩트를 짚어 내는 할머니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기억력이 저렇게 좋았던가. 하긴 나뿐 아니라 손녀사위가 예전에 사다 준 물건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사실 거라고 믿었던 걸까.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 딱 이맘때쯤이다.
뚱뚱하다고 해도 좋으니 나는 할머니가 해준 그 말이 다시 듣고 싶다.
툭 올려 주는 조기와 콩밥을 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