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기정 Jul 13. 2021

봄동 된장국과 달빛내륙철도

밥상 열하나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 이야기입니다





민생 최일선의 일꾼들, 영빈관에 모이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215명을 초청해 대통령과 함께 하는 오찬 간담회가 영빈관에서 있었다. 그야말로 민생 최일선에서 일하시는 소중한 분들을 모시는 자리다. 현장의 목소리로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지라 준비하는 마음도 그 어느 때보다 설렜다.

그런데 오찬을 앞두고 광주 북구청장이 제안하고 부산 북구청장이 대통령님께 쓰신 편지가 도착했다. 일선 구청에서 복지예산 부담을 하기에 너무도 열악한 재정상황이라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은 편지였다. 말하자면 재정자립도에 비해 복지비 지출 비율이 너무 높아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호소였는데, 대통령께서 인사 말씀을 통해 편지 이야기를 꺼내신다. 편지를 통해 기초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씀이시다. 

실제로 이 부분은 제도개선에 반영이 됐으니 그저 덕담만 오가는 자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논의들이 치열하게 오가는 자리였던 셈이다. 대통령님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지역의 노사민정이 양보와 나눔으로 맺은 사회적 대타협이자 지역경제의 회복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향한 의미 있는 출발로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사례가 나온다면 성공을 위해 적극 지원할 것이라 하신다. 광주형 일자리의 책임이 한층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우리의 지자체는 언제까지 배가 고파야 할까

청와대 영빈관 오찬에 참석하신 기초단체장들은 사실 늘 배가 고픈 사람들이다. 틈만 나면 중앙에 손을 내밀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좀 밀어달라고. 좀 도와달라고. 그래서 지자체 단체장의 능력 가운데 일 순위는 중앙에 연줄이 있는 사람, 중앙에서 돈을 끌어오는 사람이다.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의 미래를 바로 보고,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가려내기보다 중앙과 연결된 파워가 능력의 잣대가 되고 만다. 자치단체의 재정이 이런 기현상을 만든 것이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지역의 단체장들이 중앙과 어떻게 긴밀하게 소통하는가, 그 움직임들을 보게 될 기회가 많았다. 수시로 찾아오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거듭 필요성을 어필하는 단체장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해 보려고 애를 쓰는 분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감동을 받고, 또 다른 마음으론 왜 우리 지자체는 이토록 배가 고파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수준의 자치분권 상태에 있어야 하는가. 왜 중앙에 사정하고 매달려야 하는가 깊은 회의가 밀려온다.  


봄동 된장국에 자치분권의 봄을 묻다

바쁜 손님들에게 음식은 뒷전이다. 오찬 테이블에 올라온 메뉴는 봄동 된장국과 단호박죽, 메로 고추장구이와 너비아니 구이 등이다. 음식들 역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재료들로 차려져 있다. 좁은 나라 같지만 제각각 특성이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다.  

한참 만에야 테이블에 놓인 봄동 된장국을 한술 떠먹어본다. 2월 초순인데 봄동 된장국이다. 찬바람 속에서 자란 봄동은 된장국 속에서도 존재감이 확실하다. 통통하면서 보드랍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겨울 눈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파릇하게 자라날까.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겨우내 먹었던 김장김치가 살짝 물리려 할 때면 우리 어머니도 파릇한 봄동 겉절이를 밥상에 올리시곤 했다. 봄동이 나올 때면 된장국에도 봄동을 넣고 끓이셨다. 이름에 봄이 들어있어서일까. ‘봄동’은 봄의 전령사 같다. 우리 자치분권에도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경제성 잣대만으로 타당성을 따진다고?

대통령께서도 예타 면제를 이야기하신다. 모두가 관심 집중이다.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예비타당성 조사다. KTX 호남선에 그렇게 시간이 걸렸던 것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없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요가 경제성을 창출해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호남선 같은 SOC는 이동복지이자 선투자 개념에서 접근해야 했다.김대중 정부 때 예비타당성 조사만을 믿었다면 지금의 서해안 고속도로는 건설되지 않았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경제성 지표만으로는 균형발전은 요원하다. 빈익빈 부익부로 수도권 집중은 심화될 것이다. 예타 면제에 대한 우려를 유념하되 우리정부가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지자체와 협의해서 선정한 이유다. 그것이 지역 간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자 자치분권시대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중앙이 맡고 있던 571개의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지방이양 일괄법'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지자체의 자치권과 주민자치를 확대하기 위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해 통과가 됐다. 지자체의 자율권 확대와 함께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주민발안 등 획기적인 주민참여 방안들이 이 법에 담겨 있다.    


 

재정분권을 높여야 자치분권이 현실화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분권이다. 2:8이던 지방재정을 3:7로 높였고 장기적으로는 4:6까지 재정분권을 높이고자 한다. 이를 위한 민주당 내 TF팀이 구성되어있고, 치열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은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한 실정이다.

보다 과감한 재정분권 시도가 필요하다. 독일에 있을 때도 자치분권을 눈여겨봤다. 부자인 주가 가난한 주를 보조하는 방식도 신선했다. 어느 지자체 하나가 산업을 독점해봤자 소용없다. 가난한 주는 부자주의 부담으로 남기에 서로를 챙기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균형정책에서는 산업정책 부분의 아쉬움이 크다. 교통인프라나 공공기업 이전 수준을 넘어서는 지방분권형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기업이 없다. 산학연도 잘 안되고 있다. 수도권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청만 쇄도하고, 지역에는 투자를 안 한다. 앞에 언급했던 예비타당성 조사 역시도 국가산업정책에 맞도록 잣대와 방식을 정비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기업을 지역으로

참여정부에서는 파주 LCD를 만들어 수도권 2만 명을 고용했다. 한전이 떠난 자리에 GBC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로 규제 완화와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었다. 세금 없는 공공기관은 지방으로 이전되고 그 빈자리에 세금 내는 기업들이 들어섰다. 이는 실질적 의미의 균형발전 정책에서 벗어난 것이다.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주고, 세제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독일 SLP의 경우 소도시에 있는데 교육과 정주 여건을 개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지방의 교육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왜 기업들이 굳이 수도권에만 진입하려 하겠는가. 부동산 효과를 노린 다고들 말도 하지만,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란 말이다. 시장이 없어서 인프라가 부족해서라고 말한다. 결국 사람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사람을 길러내는 대학과 교육기관이 문제다.


      

지방 창의적 모델 열어주는 행정 샌드박스 필요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선언 16주년 기념식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축사를 준비했다. 골자는 기업에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규제 샌드박스'에서 착안된 '행정 샌드박스' 도입 제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창의적인 사업을 앞장서서 할 수 있도록 독려하자는 것이다.

사실 코로나 위기에서 크게 느낀 것이 지방이었다. 전주시 착한 임대인 운동과 해고 없는 도시선언, 고양시의 드라이브 스루 검사방식 제안, 전북의 남는 학교 급식비를 활용한 농산물 꾸러미 등이 대표적이다.

지방은 사실 다가올 지방 소멸에 대해 위기감을 안고 있다. 지방 소멸의 위기는 지방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심각한 국가적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각 지역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창의적 사업모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전국의 통일적 시범사업이 아니면 제어하거나 허락을 안 해주고 있다. 지방의 처지와 상황, 그 특징을 살려내는 창의적인 모델을 만들어낼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잣대로 지방을 재단할 것인가. 왜 지방의 역량을 획일화된 기준으로 가두려고 하는 것인가.      



달빛내륙철도, 지방 소멸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

마침내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이 된 '달빛내륙철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달빛내륙철도는 광주와 대구를 잇는 교통망이다. 우리 정부의 공약사업으로 영호남 교류와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사업 필요성이 강조되어왔지만,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그동안 번번이 철도망 계획에 반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 거점 간 연결성 강화 효과가 크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횡축 철도망을 확대하는 등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 고려되어 국가철도망 계획에 추가 반영이 됐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달빛내륙철도 구상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빨라진 대선을 앞두고 독일에서 급히 귀국을 해서 대선공약 준비에 들어갔다. ‘중앙집중에 대항한 지방 살리기 공약’이자, ‘영호남 상생 공약’으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8831 공약>이고, 그 중 하나가 ‘달빛 내륙철도’였다. <8831> 공약은 다시 국정과제가 됐다. 그 국정과제는 어렵사리 국가철도망 계획으로 자리매김을 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다음 정부의 제 1과제는 자치분권의 완성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영호남 갈등은 정치발전을 막는 거대한 산맥과도 같았다. 영호남 정치 갈등으로 치러야 했던 불필요한 비용과 희생은 얼마나 컸는가. 오랜 영호남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소통에 있다. 소통의 기본은 바로 만남이다.

나는 달빛내륙철도를 그냥 길이 아니라 치유의 길이라 명명하고 싶다. 산업 교류와 문화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소통의 길, 영남과 호남이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치유의 길인 것이다. 달빛내륙철도가 중앙집중에 맞선 지방 살리기의 상징이자 지역과 지역의 화합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다음 정부의 제 1과제는 자치분권에 두었으면 한다. 자치분권의 완성을 통해 지방 소멸을 막고, 중앙집중을 해소함으로써 주택 부족 등 많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토대를 닦은 자치분권의 완성을 다음 정부가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영빈관에 차려진 쫑즈와 홍샤오로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