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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우화 Oct 29. 2024

단짝

그녀는 지나치게 나를 신뢰한다.

아마 나 없이는 못 살 것이다.

가끔 내가 갑자기 정신을 잃기라도 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도 그녀이다.

내가 열이 날까 초조해하는 사람,

나에게 손하나 까닥하지 말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열을 내는 사람,

그렇게 나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그녀만큼 나를 아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만큼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공허라는 것을 모른다.

항상 충만한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나의 가장 깊숙한 곳,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자만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지켜낼 수 있다고.

그녀는 나를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시간의 흐름 앞에서 많은 것들은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었고,

어떤 것은 때가 되었음에도 너무나 생생하여 오히려 의구심을 품게 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내 안에서 죽은 것들을 끄집어 내 버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만큼 채워주었다.

그녀는 무서울 정도로 나를 의지한다.


가끔, 그녀는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럴 때면 아, 그녀가 또 먼 길을 떠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퍼진다.

그녀의 남편은 나를 거들떠도 안 본다.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내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만이 내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1년 365일 열일하는 우리 집 냉장고.

   네가 고생이 많다.

   나 잠깐 여행 좀 다녀올게.

  우리 식구들 좀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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