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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우화 Dec 11. 2024

반사 작용

심리

모임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 시동을 켜고 메인 도로를 탔을 때였다. 분명 창문은 닫혀있는데 작게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확인차 창문 버튼을 올려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나는 타이어에 펑크가 났나 싶어 평소보다 천천히 운전했다. 조금 긴장되었으나 다행히 집은 가까웠고 교통체증도 없었다. 신호등을 앞에 두고 서서히 멈췄을 때 어떤 한 남자가 내 차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일부러 시선을 피하려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얼마나 세차게 창을 두드리는지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뒤쪽 타이어를 가리키며 뭐라고 한 뒤 애매한 표정으로 돌아갔는데, 당황해서 뭐라고 했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펑크가 났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고 그는 그걸 알려주러 온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야 깨닫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케냐에는 도로에 구걸하는 사람, 물건 파는 사람, 공연하는 사람등 다양하게 있다. 이들은 모두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두 다 도울 수는 없기에 나는 나름의 기준을 두고 있다. 그 기준에 멀쩡한 성인 남자는 들어가지 않기에 그들이 다가오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는 다리 한쪽이 불편해 보이는 남자가 좁은 도로에 서서 구걸하고 있었다. 보통 몸이 불편한 분에게는 도움을 주려 하는데 그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창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때는 가는 길이 바빠 경황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무서워 창문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앞차가 조금 움직여 그를 피해 앞으로 움직였는데 그는 서서히 다가온 뒤차의 창문도 날카롭게 두드리며 위협하는 듯 보였다. 룸미러로 보니 운전자가 여자였다. 혹시 여자들에게만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갑자기 그가 발을 끌며 나에게 돌진하듯이 오는 게 아닌가.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 외국인이라 그가 더 달갑지 않게 생각한 건지 아니면 무서워하던 내 표정에 기분을 상한 것인지, 혹은 차를 앞으로 급히 움직인 것? 대체 뭐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그가 거의 내 차 뒤편에 닿아 차를 두드리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차가 앞으로 조금 빠져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닌 뚫린 갓길로 후다닥 빠졌다. 너무 놀랬다.


몇 달 전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과거의 경험과 생존 본능이 나로 하여금 어떤 일에 대해서 자동 반응을 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었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 내 안에 소소하게 쌓인 경험들이 비슷한 행동이었지만 의도가 달랐던 일에도 몸이 먼저 반사 작용을 해 그 사람의 호의를 무시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가 떠나고 옆 라인에 있던 차량도 나를 보며 손짓한다.  앞뒤로 타고 있던 사람들이 창문을 모두 내리고 차에 펑크가 났다며 열심히 알려준다. 나는 또 놀래서 창문을 조금 내린 후 알고 있다는 말만 하고 신호를 받아 움직였다. 그 사람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못해 미안했다. 당황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간단한 영어 한 마디도 바로바로 나오지 않아 어버버버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한 뒤 타이어를 확인하는데 경비원이 다가와 내 차 소리가 이상해서 말해주러 왔다고 한다. 그때서야 나는 알고 있다고 고맙다고 웃으며 말해줄 수 있었다.


(이때까지는 펑크 난 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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