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jiin Jan 09. 2022

내가 인테리어 사기를 당하다니..

엔딩이 없는 이야기




긴 장마가 지나가고 붉은 단풍들이 바닥에 소복이 쌓이고 나면 아주 오랜 시간 겨울잠을 자고 싶다.













그 후 이야기


속초 경찰서, 강릉에 있는 변호사 나름 상담을 받아봤다. 인테리어 사기는 시공이 들어가면 사기죄 성립이 어렵다는 말, 그 대리점주가 한두 번이라도 연락이 되면 그 또한 처벌 대상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는 말, 민사로 넘어가면 상당히 피곤하고 피해 금액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말, 변호사 비용이 400만 원에서 추가로 더 들어갈 수 있다는 말, 이 모든 일들이 몇 년을 따라다닐지 모른다는 말. 


그 와중에 우리를 돕겠다며 또다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접근하는 사람들.

내 이야기를 듣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며 몇몇 접근해왔다. 그것도 결국 사기가 깃들어진 내용이거나 인테리어 비용을 더 비싸가 부르며 누가 이렇게 문제가 있는 곳을 들어오냐는 … 상처 난 자리에 소금을 끼얹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다시 공사를 진행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업체들과 미팅을 해봤지만 짧은 시간 내 타인을 다시 신뢰하기란 우리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SNS에 알렸고, 글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간히 SNS를 통해 안부를 묻던 대학교 후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가, 즉 남편이 인테리어를 하는데 현재 일정이 바쁘긴 하지만 도와줄 수 있으니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생각을 할게 어디 있나 그저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후배의 도움으로 다시 인테리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작업자들이 오다 보니 금액적인 부담감이 커졌지만 우리에게는 값을 치르더라도 당장 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공사가 멈춘 시점에서 공정률이 대략 30~40프로 정도 된 거 같다. 하지만 그 30프로 기초공사마저도 엉망으로 해놔서 다음 인테리어팀이 고생을 해야 했다. 사기를 당하지 않고 완공이 되었더라도 우리는 아마 그들이 해놓은 엉망진창 속에서 집을 미워하며 몇 년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후배 부부 또한 우리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해줬다. 최대한 빠르게 공사를 마무리해주고 싶어 했지만 최소 2주가 더 소요된다고 했다. 또다시 내 머릿속에는 머무를 숙소 생각뿐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공사가 한 달이 지연된다고 했다면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하든 한 장소에서 쭉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구했을 텐데 대리점이 우리 눈치만 살살 보며 상황만 회피했던 게 결국 최악을 만들어 버렸다. 3번째 숙소를 알아보려 다시 에어비앤비 앱을 켰다. 이제 강원도는 완전한 극성수기로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평창에 있을 수 없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속초로 넘어가기로 했다. 방이 없다. 며칠을 찾아보는데 방이 없다. 그때 신규로 등록된 숙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방도 2개고, 부엌도 있었다. 숙소 값이 너무 비쌌지만 따질 수 없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지 2주 만에 우리는 겨우 속초로 넘어올 수 있었다.











드디어 속초


 속초 숙소는 그래도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났던 숙소였다. 숙박비가 비싸더라도 나머지 2주도 여기서 쭉 머물고 싶었다. 자꾸 숙소를 이동하다 보니 다다나 장군이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다다는 자다 깨서 울고, 또 잠들기 전까지 목놓아 울었다. 다다의 눈물 속에 숨어 나도 목 놓아 같이 울었다. 장군이는 여전히 침대 밑에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머물러야 했던 2주 기간 중 하루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숙소에서 10일을 머무르고 또 다른 숙소로 이동했다. 한 달 동안 4번의 숙소를 이동하면서 짐 싸는 기술이 얼마나 늘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몇 시간을 짐을 풀고 정리하고 다시 짐을 쌌는데 많은 시간이 허비했지만 세 번째 숙소에 도착할 즈음 숙달된 조교처럼 행동이 간결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아예 꺼내지도 않고, 프라이팬 하나도 세 식구 먹을 식사 준비를 했다. 적당히 더럽게 살았으며, 매일 같은 음식도 나름 즐겁게 먹었다. 처음 양주 집을 떠날 때 꼭 필요했던 물건들이라 생각하고 챙겼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다 사치품들처럼 느껴졌다. 



 속초로 넘어오자마자 대기업 본사 책임 보상자와 만나 현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보상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그 사이사이, 새로운 인테리어 업체는 큰 공사 위주로, 우리는 현지에서 섭외 가능한 작업자나 기타 자재 등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주문하는 등 서로 분업해며 바쁘게 매일매일을 살아갔다. 


네 번째 숙소는 오래된 소형 아파트였다. 외벽이 오래되다 보니 벌레와 모기에 취약했다. 버틸 때까지 버틴 거 같았다. 바닥과 벽지 시공만 마무리되면 들어가자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큰 공사가 마무리되고 우리는 이틀 정도 베이크 아웃을 한 뒤 그날 저녁 한 달 만에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날이 8월 21일이다. 잊을 수 없는 날. 늦은 저녁 현관에 발을 딛자마자 눈물샘이 고장 난 거처럼 뺨을 거치지도 않고 바닥으로 뚝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물건이 주는 힘을 본 날이기도 하다. 이 집도 다다와 장군이에게는 그저 낯선 공간일 텐데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마치 여기가 집이라는 걸 아는 것 마냥 각자 자기 물건들을 향해 달려갔다. 장군이는 캣타워에 올라고 갸릉갸릉 그러며 입맞춤을 나누고, 다다는 헤어져 있던 인형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안아주고 있었다. 나는 한 달 동안 컨테이너에서 겨우 숨만 붙어 돌아온 반려 식물들을 만나러 베란다로 향했다. 축 처져 정말 숨만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를 보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살아있다는 게 기특하고 고마워 주저앉아 울기만 했던 거 같다. 이삿짐센터에서도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대부분 우리와 비슷하게 맡겨진 식물들은 다 죽어서 나왔다고 했다.




지금은 좋은 분의 도움을 받아 잘 자라고 있다.








엔딩이 없는 이야기


뒷이야기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급하게 들어온 만큼 3주 정도 새집증후군 알레르기로 온 식구가 고생해야 했다. 그중 내가 유독 심했다. 그렇게 또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야 했다. 시공이 안된 자잘한 부분들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대기업과의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는 본사에 피해를 본 금액과 영수처리가 가능한 지체 보상, 이사, 기본 식비, 숙박비를 요청했다. 그 값이 2,700만 원 정도 된다. 눈에 보이는 피해에 대한 부분만 요청했다. 처음에는 본사에서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책임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말과 함께 계약서상 표기된 본사 자재값과 지체 보상에 대한 부분을 보상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또 며칠 뒤 자재값은 보상할 수 없으며 도의적 책임으로 인한 피해 보상금으로 850만 원을 제시했다. 850만 원 어떻게 보면 너무 큰돈이고 이 일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이라 받고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850만 원을 받을 경우 우리의 사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850만 원이라는 보상에는 SNS, 블로그, 법률, 언론 보도 등 어떤 것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조건이었다. 한마디로 이 일에 대해 대기업은 우리가 입을 다물어주길 원했다. 조건을 가장한 거래였다. 도의적이라는 말 뒤에 숨은 목적이 있었다.  나는 피해자인데 어느 순간 거래자의 입장에 있다는 현실에 좌절도 했지만 우리는 100원도 받지 않고 말할 자유를 갖기로 했다. 평생을 떠들고 떠들 이야기라며 참 비싼 이야기의 값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값을 풀어내고 있다. 유튜버로 활동 중인 부엉이는 영상으로 나는 글로-



금액적인 부분의 피해가 얼마나 되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대리점에 넘긴 금액은 3천만 원이 조금 넘고, 공사가 멈춘 시점에서 계약상 이행되지 않은 부분을 얼추 계산하면 1천7백만 원 정도 될 거 같다. 그 뒤에 들어온 인테리어 추가 비용이 2천만 원, 우리가 시공한 금액도 1천만 원이 넘는다. 아직 시공이 안된 부분들이 있어 추가로 제품을 구입하면 더 들어갈 거 같다. 또 그 기간 동안 부엉이가 일을 하지 못했고, 이삿짐 추가 비용에 의도하지 않게 떠돌이 생활하며 쓰인 생활비 등 모르겠다. 도대체 금액을 얼마를 측정해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젊고 가능성이 있으니 열심히 일하면 그 돈은 다시 모을 수 있다고 계속 얘기한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되돌릴 수 없다. 한 달 동안 나이가 많은 장군이가 겪어야 했을 극도의 불안감, 21개월밖에 안된 아가에게 뭐라 설명할 방법도 없이 그냥 엄마, 아빠를 따라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던 시간, 부엉이가 고객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스스로 힘들었던 시간, 꿈을 안고 왔는데 절망만 가득했던 시간, 그 한 달이 나비효과처럼 수습해도 수습이 되지 않고 밀려오기만 하는 시간들.


나에게 직접적으로 같은 대리점의 피해자라며 연락 온 사람만 4명이다. 그중 한 가족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떠돌이 생활이 지옥 같았다던 말을 했다. 나도 지옥 같았다고 말하면 앞으로 살아야 할 이곳이 진짜 지옥이 될까 봐 차마 입에 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분의 그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 지옥 같았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시간들.




나름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나 보다. 왼쪽 앞머리가 하얗게 샜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하얗게 샐 수도 있나 보다라며 언젠가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사형수가 하루아침에 백발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는 내용을 부엉이에게 전하며 머리를 쓸어 넘기도 했다.  




처음 이사 와서 모든 걸 이 지역 탓을 했다. 나랑 안 맞는 거 같다고, 다시 또 이사를 가고 싶다고, 계속 도망을 가고 싶었다. 양주를 그리워하며-

시간이 지나니 이제야 이 도시에 우리가 온 이유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다에게 속초의 초록을 매일 보여주고 있다. 호수 산책을 하고, 설악산을 뒷산 드나들 듯 다니며, 바다에서 커피 한 잔을 한다. 그렇게 자연에게 조금씩 털어내고 있다.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 그리고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궂은비를 잔뜩 맞고 지독한 여름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까지 잔기침이 남아있지만 시간의 흐르매 조금씩 잦아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평생 이 잔기침을 달고 살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가족이, 친구가 건네는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조금씩 달래며 살아가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굵어진 빗방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