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사쁨 Nov 15. 2024

남편을 빛내는 와이프입니다.

"어머니 하이가 성실하잖아요."

"하이가 성실해요?"

"그럼요. 하이 성실해요!"


내 평생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성실하다는 말은 어떻게 듣는 건지, 여섯살 짜리가 뭘 했길래 성실하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건지 알 길이 없다. 스파이더맨 되겠다고 거미줄 쏘며 줄기차게 옆돌기만 하고 있는 이 아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 성실함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아이의 사회 생활은 미지의 영역인가 보다. 내 새끼 제일 잘 아는 것도 엄마고, 제일 모르는 것도 엄마인지 어쨌든 내 피는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어머! 자기 닮았나보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남편에게 공을 돌렸다. 남편은 '이거라도 나를 닮아 다행이군.'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고 끄덕였다. 예의상 "자기도 성실한데 왜."라고 법도 한데 그저 끄덕이기만 했다. 안도하는 표정이 인상 깊었다. 대답도 않고 고개를 위아래로, 그것도 천천히, 지나온 삶에 대해 음미하듯 그저 끄덕이기만 했다.




성실함이란 뭘까. 해야 일을 꾸준히 하는 것? 틀린 말은 아닌데 시시한 느낌이 든다. '꾸준히'가 세상 제일 어려운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꾸준함' 만으로 성도를 판별 하는 왜인지 아쉽다. '규칙적으로 한결 같이' 라는 조건을 기본 전제로, 힘들고 귀찮은 부류의 정서적 방해물을 극복해 내야 한다.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도 탈락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해야 할 일'도 포함해야 옥석이 가려진다. 무엇보다 요란스럽지 않아야 한다. 가벼우면 인정을 못 받는다. 성실함이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그 과정이 고되더라도 꾸준히 해 나아가는 뭉근한 힘'. 이제 좀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성실함을 하찮케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그 값진 태도를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로 간주하며 그러한 친구들을 재미없게 사는 사람으로 얕보기도 했다. 서른에 접어들어 늦깍이 고시생이 될 줄 모르고, 성실함 없이 이루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노력 없이 얻어진 것들을 내 실력인 줄 착각하던 때 그랬다. 반짝하고 잠깐 타오르다 마는 순간의 열심으로는 얻지 못할 간절한 목표가 생기고서야 그 가치를 알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는 삶에 대한 정직한 태도가 성실함이라는 것을.   




안타까운 것은 역시나 여전히 나는 불성실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관성이라는 단어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익숙한 편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니 그래서 습관이 무서운 것이고. 굳이 한결같은 점을 꼽자면 불규칙적이기가 꾸준하며, 순간의 감정과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대문자 P라고 MBTI를 내세워 변명을 해 본다.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든 나에게 데일리 루틴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편은 가끔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하이가 자기 닮을까봐 걱정이야."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까내릴수 있을까 싶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타격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알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에 동의하며 미소로 화답하는 여유는 배우자의 성실함을 깊이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를 존경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그것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빛이 드러나듯 나의 불성실함 덕에 남편을 알아봤다. 이런 것을 두고 심미안이라고 해야할지 혜안이라 해야할지 고민이 조금 되지만 확실한 건 계는 내가 탔다는거다. 아이가 나를 닮아 걱정이거나 말거나 계 탄 사람이 성을 낼 이유가 없다.




남편이 꾸준할 때 나는 번뜩이고, 남편이 현재에 머물 때 나는 미래를 상상한다. 남편은 단순하고 나는 풍성하다. 남편은 나의 불안을 낮추고 나는 남편의 안일함을 일깨운다. 남편은 불편함을 찾고 나는 배울점을 찾으며 나는 남편의 쏘아붙이기 능력을 부러워 하지만 남편은 나의 쉼표와 느리게를 칭찬한다. 남편의 성실함 못지 않은 나만의 가치가 있으니 주눅들 필요도 없다. 서로의 다름을 무기삼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비춰주니 그야말로 환상의 짝궁. 이따금 돌려까여도 괜찮다. 그정도 아량을 갖추고 있어야 다소 풀어진 생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조금 덜 성실해도 괜찮다. 나로 인해 두 남자는 더욱 돋보일 예정이다. 그들의 성실함을 알아주며 박수치고 쌍엄지를 들어올릴 준비는 이미 되어있다. 남편은 끄덕였지만 난 끄떡없다. 내 덕에 남편이 빛난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남편에게 ck를 입히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