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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May 04. 2024

5월의 상사병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체육대회의 꽃은 누가 뭐래도 이어달리기이다. 달리는 보폭과 속도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다. 작은 실수 하나로 순위가 바뀌고, 그 바뀐 순위 다시 뒤집어드라마같은 명승부가 펼쳐지기에 이어달리기를 앉아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체육대회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그래서 이어달리기는 제일 마지막에 치른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니까.


 고등학교 아이들의 이어달리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타고난 재능이 무르익고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때. 올림픽 저리  만큼 치열하며 격정적이다. 걸출한 인물 있다면 더.


  병우. 새까만 피부에 쌍커풀 없이 큰 눈은 서글서글했고, 콧날마저 오똑했다. 중학교 때는 그렇게 사고를 쳤다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학교를 성실하게 잘 다녔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운동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네 명의 주자가 뛰고 있다. 그 중 병우 반이 꼴찌로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주자는 병우다. 왜. 주인공이니까. 


  바톤이 병우에게 넘겨지고 병우가 달리기 시작하자 다들 뭔가에 홀린듯 일어섰다. 병우 앞에 세 명의 주자, 번째 주자는 쉽게 제쳤지만 두 번째로 달리는 아이와 반 바퀴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 병우가 뛴다. 무섭게 뛴다. 무슨 큰 일을 낼 것처럼 그렇게 다.


  사람이 그렇게 뛰는 걸 처음 봤다. 온 몸으로 뛰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래 한 몸인 그것이 더 단단하고 강력하게 응축된 느낌. 얼굴과 턱 근육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움직임의 시작 머리다. 관자놀이에 핏발을 서도록 힘을 주어 머리가 먼저 치고 나가면 슴통이 따다. 그 힘을 다리가 받아 바람같이 달린다. 놀라운 속도로, 무서운 힘으로 앞으로 앞으로 치고 나간다. 지치지 않는다. 폭주한다. 병우의 모든 근육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폭발뿜어져 나오는 그 기운에 나까지 몸이 굳다. 내가 뛰는 것이 아닌데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 병우의 힘은 역동(力動)이기도 했고, 역동(逆動)이기도 했다.


 한 학년에 열반이 넘었다. 무려 천명, 천명 이상이다. 모든 관중이 병우만 본다. 압도적인 재능에 넋을 잃었고 완벽히 제압당했다. 그 말도 안되는 차이가 줄어든다. 점점 가까워진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게 되다니, 병우 정말 미쳤다. 학년을 가리지 않는다. 몇 반인지 중요치 않다. 환호가 거세진다. 두 번째 주자를 앞지르는 순간, 환호는 함성으로. 결승선에 다다른 병우는 관중을 둘러보며 더 소리치라는 듯 두 팔을 하늘 위로 휘휘 들어올렸다. 세리머니까지 완벽했다. 열광의 도가니가 바로 그때, 거기 있었다. 천명이 동시에 '와'하는 그 순간 운동장은 떠나갈 것 같았고 병우는 햇빛보다 더 찬란히 빛났다.


 경이로움. 경이로웠다. 열여덟의 아이가 보여준 그 장관을 현장에서 내 두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 축복라고 생각할만큼. 마음껏 놀라고 탄복하는 기회를 누리고, 순간 순간의 감격과 흥분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때마다 끄집어 내 그날처럼 다시 두근대는 심장을 느다. 나는 그런 일을 한다. 감탄하며 그것을 되새김질 하는.


  5월의 상사병. 체육대회만 하면 생각난다. 다시 보고 싶은 병우. 얼마나 멋진 청년이 되었을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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