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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집 1. 대전역 <우리칼국수>

대전 중구 대종로505번길 19

by 슈리



‘진로집, 광천식당 많이들 가지. 그래도 친구들이랑 갈 때는 우리 칼국수랄까.’

-대전 30년 토박이 친구의 말 인용.






두루치기라는 음식은 일반적인 지역에선 뜨끈하게 데운 두부 옆에 김치나 돼지고기를 볶아 함께 낸 음식을 말한다.


대전의 두루치기는 다르다. 대전에서 두루치기라고 하면 매콤하고 알싸한 양념에 넓적한 두부를 옅게 조려 먹는 음식으로, 거의 모든 두루치기 집에 칼국수 메뉴가 함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 이유는 두루치기라는 음식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간단히 알 수 있다. 맛있는 칼국수 집에서 단골에게 서비스 차원으로 모두부를 얹어주던 것이 시초라고.


원래 칼국수가 주였던 음식이 세월이 지나며 두부로 주객전도 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는 관점에서, 오늘 소개할 집은 다른 두루치기 집과 사뭇 다르다.



김 펄펄 나는 화끈한 두부를 먹고 나면 남은 양념에 칼국수 사리를 비벼 먹는다. 이것이 보통의 두루치기를 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 칼국수는 간판에 고집스럽고 올곧게 쓰인 ‘칼국수’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우선 두부보다 칼국수를 먼저 먹어야 한다.




KakaoTalk_20240322_020513129.jpg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출입문과 정겨운 손글씨 메뉴판.






필자는 한때 대전에 살면서 중앙로 근처의 두루치기 집을 섭렵하고 다녔다. 그 수많은 두루치기 집 중 이 집 칼국수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KakaoTalk_20240322_020513129_01.jpg 양이 참 많다. 두명이 두루치기를 시킨다면 칼국수는 하나만 시켜도 된다.





싱거운 멸치 육수에 담가주는 사리용 칼국수가 아니다. 이 집은 이미 칼국수가 훌륭한 메인이자 주인공이다.

해물의 깊은 감칠맛. 바지락이 듬뿍 들어있는 데다 끝을 청량하게 받쳐 올리는 매운 맛이 일품인 육수.


그리고 이 집만의 포인트인 들깨가루를 빼먹을 수 없다. 칼국수를 주문하면 사장님은 늘 같은 질문을 하신다.



“들깨가루 넣어 드려요?”



만일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입속 교정 장치가 오염되는 등의 큰 문제가 없다면, 반드시 들깨가루를 넣어 달라고 해서 먹어보자. 육수의 감칠맛이 배로 불어 난다.





KakaoTalk_20240322_020513129_02.jpg 채소를 아낌없이 넣어주어서 좋다.





두루치기는 외할머니가 해주는 갈치 조림 양념 맛이다. 채소도 큼직하게 들어가 있다. 먹다 보면 접시 어딘가에 갈치나 고등어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섞어 두루치기를 시키면 오징어가 같이 나오는데 이 오징어를 먹으면 얼마나 해산물이 잘 어울리는 양념인지 알 수 있다. 두부만 먹기 아쉬운 사람은 꼭 섞어 두루치기를 주문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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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 칼국수는 이십 분, 두루치기는 사십 분 잡으셔야 돼.”


평일에 가면 점심 칼국수 손님이 꽤 붐빈다. 인근 회사원들이 방문하기 때문이다. 홀 보는 남자 사장님은 나름의 기준을 세워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시간을 안내해주는데, 음식이 나오는 걸 가만히 살펴보니 그가 말한 시간이 대체로 들어맞는 걸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직장인들은 늦을 걱정 없이 여유롭게 칼국수를 즐기고 나갈 수 있다.



몇 번이고 방문해도 맛으로 감동을 안겨주는 이런 집들이 자꾸만 유행과 시대에 밀려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내가. 내 배우자가. 내 아들이. 그리고 또 그 아들이. 손에 손잡고 대를 이어 방문할 수 있도록 우리 칼국수가 오래오래 장사했으면 좋겠다.







-주차공간 없습니다. 인근 공영주차장에 주차 가능.

-가게 공간은 협소하지 않으나 다소 붐비는 시간엔 웨이팅이 있어요.

-화장실 낡았지만 깨끗합니다.

-사장님 매우 친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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