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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리미 Jun 27. 2021

2. 사막(四幕)의 카덴짜(2)

       2)   四幕의 카덴짜(2)     

어느 날 아침 하늘에서 눈덩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병문안 온다는 식구들을 오지 말라고 전화했는데 벌써 떠났단다. 7층 창가에 누워서 눈 떨어지는 모습을 올려다 보았다. 소복소복 시적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수제비 덩이를 쏟아버리 듯 무섭게 퍼붓고 있었다. 

눈송이가 그렇게 큰 것을 본 적이 없다. 내려와서 얼굴을 덮을 것 같았다. 두어 시간 동안 죽자고 퍼붓고는 뚝 그치자 해가 쨍쨍하게 빛났다. 병원 앞 작은 동산이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 안 되어 다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희한하게도  변덕스러운 날이었다. 

 왜 그런지 그 눈 오던 날이 늘 생각이 난다.

그 다음날 퇴원한 후,

 석달 만에 매달았던 장루를 떼려고 다시 입원을 했다.     

병동은 같았으나 병실은 달랐다. 침대 위치도 달랐다. 창가에 있지 않고 어두컴컴한벽 쪽에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루를 떼고 다시 꿰매고 나서도 몇 일이 지나도록 의사가 드레싱을 하러 오질 않았다. 

수간호사가 아침마다 꿰맨 부위를 열어보고 갔는데 아무런 처치는 해주질 않았다. 몸에 열이 있는 것 같어 재보았다. 38도가 넘었다. 간호사는 뭔가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별다른 처치는 없었다. 드레싱을 안 해주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쌀쌀했다.


이상한 꿈을 자주 꾸었다. 꿈이야 다 황당하기 마련이지만 황당해도 너무 황당했다. 견학하러 온 학생 간호사 들이 해군 세라 복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고, 멀리 외국에 나가 혼자 외톨이가 돼서 기를 쓰기도 했다. 

어느 날 자다가 소변이 몹시 보고 싶어서 잠이 깨었다. 퇴원하고 막내 아들네 집이었다. 주방인데 주방에 내 침대가 있어서 이상했다. 화장실에 갈 생각은 안 하고 부엌에 왼 커튼이 이렇게 많이 쳐 있나...궁금했다. 부엌 뿐 아니라 온 집안에 전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낮에 보았던 조무사랑 담당 간호사가 들락이었다. 왜 모두들 퇴근해서  막내네 집으로 왔는지 이상했다. 아들과 병원이 MOU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이 옆에 있었다. 꿈꾼 얘기를 했다. 근데 왜 간호사랑 조무사들이 막내 집으로 왔는지 이상하다고 말했다. 동생이 나무랐다. 언니 여긴 병원이야....아니야 막내 집이야...고집을 부렸다. 그런 말이 여러 번 오갔다. 동생이 화장실 안 가느냐고 일으켜 세웠다. 화장실에서 나오다 보니까 늘 열려있는 문으로 간호사 스테이션이 보였다. 

아...병원이로구나...그제야 알았다.

어머 근데 난 왜 막내네로 퇴원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 동생이 내가 그동안

부렸던 행패를 얘기해 주었다. 밤에 소리소리 지르고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다. 챙피

해서 죽는 줄 알았어 한다. 

내가? 난 그런 기억이 없었다. 

언니가 열이 높아서 정신이 좀 이상해졌었나봐. 한다.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열이 높았단 말인가? 내 머리는 빙빙 돌기 시작했다. 사실 좀 이상했다. 집도의 선생은 한 번도 내 병실에 온 적이 없었다. 전공의는 그 사이에 다른 의사로 바뀌었는데 얼굴도 모를 정도이다.

장루를 떼었는데도 퇴원을 시켜주지 않았다. 언제 퇴원하느냐고 물어도 간호사들은 선생님께 물러보라는 말 뿐이다.

선생인지 생선인지 얼굴을 봐야 물어보던지 물어뜯던지 할 것 아니냐 싶었다. 해열제는 꼬박꼬밗 놓아주었는지 다시 열은 오르지 않았다.  


밤 열 두시 넘어서 여자 의사가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채 들어왔다. 의자에 않더니 차분히 수술 부위를 열고 드레싱을 할 준비를 했다. 처음 보는 여의사였다. 

어쨌든 며칠 만에 보는 의사라 반가운 데다가 예쁘고 상냥했다. 

수술을 마치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미안해 했다. 얌전하게 생긴 전공의는 상처를 풀러 보곤 깜짝 놀란다. 

어머 상처가 곪았어요. 봉합한 것을 다 뜯어내고 다시 소독을 해야 되겠어요. 

수술 후 처음 받는 드레싱이에요. 어리광쟁이처럼 친절한 여의사에게 고자질을 했다. 어머...수술한지 며칠이 되셨는데요? 닷새 쯤이요.

그래요? 여 의사가 놀란 모양이지만 더 이상 내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곪은 데를 긁어 내야 하기 때문에 아프실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여의사가 아주 상냥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고마워서 의사의 명찰을 보았다. 우리 아들들하고 성과 항렬도 같았다. 

나는 이 병원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의학 드라마를 쓴 아무개라고 말했다. 의사는 너무 놀라며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퇴원하면 수필을 쓸 생각인데 선생님 얘기도 할 거예요.

의사는 웃으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30분 쯤 꼼꼼하게 긁어내고 다시 약을 바르고 거즈로 덮고 일을 끝내며 내일 또 올게요. 웃으며 나갔다. 같은 병원 입원 두 번 만에  친절한 여의사를 만나 너무도 반가웠다.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나 생각해 보았다. 사실 처음에 입원했을 때는 모두들 다 친절하게 굴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렸을 뿐이지 나에겐 이상하리만큼 친절하려고 했다.

나에게 억지로 죽을 먹이고 약을 먹였던 전공의와 간호사도 나를 위해서 했던 일이며 0이상한 기계를 가져다가 코끼리를 만들어가며 오랫동안 금식을 하게 만든 것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집도의선생도 말은 안했지만 성의껒 대해준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의학 드라마를 쓴 작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성의를 다해서 치료를 해주었다.

퇴원하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집도의 선생님은 내 암 수술 뿐만 아니라 수술할 때 애를 먹었던 복부 지방도 빼주려고 마음 먹었던 게 틀림이 없다. 그래서 그는 해서는 안되는 배 기름이야기를 아들에게니까 일부로 했던 것으로 짐작이 갔다. 이번 기회에 복부 비만을 고쳐줄 요량으로 그때부터 아들에게 암시했지 싶었다. 

그 의사 선생님이 의대생이었거나 수련의 시절이나 아님 초년 교수시절에 누구나 알고 있던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의대생 드라마의 작가여서 내 이름을 보고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논리적 의심을 했지만 내가 스스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30년이나 지난 지금 드라마의 작가까지 기억하리라고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쓰겠지만 문재인 캐어 때문인지 입원료도 생각보담 많이 낮게 나와서 놀랐다. 자신의 소관으로는 최대의 성의를 보인 것이라는 합리적 짐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퇴원한 석달동안 병원 외래 진료도 한 달에 한 번씩 받았기 때문에 그 때까지도 성의있게 대해주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자고 보니 찬밥덩이가 된 더러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들에게 아무래도 퇴원해야겠다고 말을 했다.  범생인 아들은 그럼 퇴원하라고 할 때 해야지라며 어림없다는 투로 만류를 했다. 나는 그동안 이상했던 사실을 아들에게 말을 하곤 드레싱 정도만 하는데 구태어 여기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을 했다.

아들은 웃으면서 그 일 때문인가....? 하더니 혼자 웃었다.

그 일이 뭐냐고 채근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설마 그 일 때문은 아닐거야...했다. 

내가 판단을 할테니 말해 보라고 해도 녀석은 실실 웃으며 끝내 아닥하고 있었다.

집도의 선생도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

여의사 선생이 시간나는 대로 와서 드레싱을 해주었다. 침대도 마음에 안 들고 전부 다 마음에 차지 않아 퇴원을 하고 싶었지만 수간호사 선생은 아직 오더가 안나왔다는 말 뿐이었다. 여의사는 밤이 늦어도 와 주었다.

어느 날 짬이 났다면서 낮에도 들어와 드레싱을 해주고 있었다. 마침 들어와 보던 간호사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어느 환자가 찾는다고 했다.

잠깐만요....조금 있다가 올게요..하고는 상처에 거즈를 덮고 나갔다. 한참을 지나도 여의사는 오지 않았다.  

그날도 환부는 열린 채 몇 시간이나 지났다.  

대신 어벙하게 생긴 남자 인턴이 들어왔다. 1년 차 정도로 보였다. 앉아서 하지 않고 허리를 90도로 꺾고 불편한 모습으로 서서 한다. 앉아서 하세요. 했더니 바빠서요....한다.

서서하면 시간이 단축되나요? 약간 이죽거렸다. 

그건 아니지만... 쉽게 긍정을 한다. 

마음이 바쁜가보다 했는데 끝내 일을 처지르고 말았다. 드레싱을 마치고 나가더니 곧 바로 다시 되들어왔다. 테잎을 뜯어내고 거즈를 벗겨내더니 환부에 머큐롬을 바르고 나간다. 명색이 의사라는 녀석이 환부에 소독만 하고 약을 바르는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여의사는 끝내 오질 않았고 퇴원할 때까지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이 병원에 더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레싱은 동네 병원에서 받자 생각했다. 

그날 밤에 일부러 진상을 부렸다.

내가 복용하고 있는 약은 전부 스테이션에 맡겨놓았다. 자야하는 시간이 되어도 약을 갖다주지 않았다.

 마침 수간호사 선생이 늦게까지 있었다. 약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내 약을 찾아보더니 다 떨어졌다고 했다.

성질이 나서 한 소리했다.이제와서 그러면 어떡해요. 난 그 약이 없으면 한 잠도 못 자요....사실이었다.

간호사는 내가 성이 난 것을 알고는 누굴 시켰는지 오랜 후에 약을 갖다 주었다.

먹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내 약이 아니어서 그랬나 보다. 나는 밤 3시에 나가서 약을 달라고 했다. 

아까 갖다준 약은 1층 약국에서 딱 한 알만 얻어온 모양이었다. 눈치를 채곤 계속 약타령을 했다.

하는 수 없어 누군가 또 일층으로 내려 보낸 모양이었다.  참고로 여기가 몇 층인지 말하면 독자는 나를 나쁜 인간으로 생각을 할까^^ 간호사는 4시 쯤에 약 한 알을 갖다 주었다.

다음날 나는 퇴원을 했다. 아니 쫓겨났다. 

퇴원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말과는 달리 다음날로 퇴원령이 내려진 것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아들이 놀러서 차를 몰고 왔고 집까지 실어 날랐다. 

퇴원 아직 멀었다더니 왜요?

간밤에 진상 부린 일을 말하며 깔깔 웃었다. 그럼에도 아들은 그 일에 대해서는 아닥하고 있었다.


안성의 공기는 시원하고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맑았다.

                                                                                                                                       201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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