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분명 깊이 자고 있는 것 같은데, 거실 건너 작은방에 있는 아들이 화장실 가는 기척을 모두 알아챈다. 아들이 방문을 여는 소리, 화장실 불을 켜는 소리, 문 닫는 소리,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소리까지.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그 작은 움직임들이 마치 머리맡에서 들리는 것처럼 또렷하다. 뇌의 어딘가가 계속 깨어 있으면서 주변을 감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맛에도 예민한 내 입은 ‘고기 맛’과 ‘냉장고 맛’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고기를 한 입 넣는 순간, 누린내나 비린 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그대로 입맛이 싹 달아난다. 냉장고 맛은 말하자면 오래된 김치나 반찬 냄새가 스며든 듯한 꿉꿉함인데, 그게 케이크나 떡에 묻어나면 속까지 울렁이게 만든다. 어떤 음식이든 한 입만 먹어도 그 맛의 균형을 간파하고, 맛있고 맛없음을 금세 판단한다. 어지간한 맛집은 내 입맛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또 여행지에서는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다. 내가 평소 덮고 자던 이불이나 익숙한 베개가 아니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며 뒤척이기만 한다. 이런 일이 꼭 여행지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술 마신 남편이 코를 고는 밤이면 결국 방을 나와야 한다. 하지만 내 침대가 아닌 다른 어디에서도 편히 잠들 수 없다. 결국은 한밤을 꼬박 새우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예민함 때문이라 생각했다. '예민하다'란 말의 속뜻은 '까다롭다'라거나 '성격 나쁘다'라고만 여겨져서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감각을 숨기려 애썼다.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이기 싫어서 가능한 한 티를 내지 않으려 기를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예민한 사람들이 가진 장점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되면서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그토록 불편하고 결점이라 여겼던 이 감각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깊게 느끼는 능력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리에 민감한 만큼 나는 목소리를 잘 구분한다. 예전에 방영하던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진짜 가수를 단번에 맞히곤 했다. 모창 실력이 거의 완벽한 도전자들 속에서 나는 다른 하나의 목소리를 콕 짚어냈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 방송하는 ‘복면가왕’을 보면서, 복면을 쓴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누군지 바로 맞히곤 한다.
미각에서도 놀라운 결과를 경험한 적 있다. 우연히 해본 미각 테스트에서, 나는 상위 7%의 민감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혀에 있는 미뢰(맛봉오리)의 수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기에 쓴맛뿐만 아니라 단맛과 짠맛, 매운맛까지 더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배가 아무리 꼬르륵거려도 맛없으면 숟가락을 바로 내려놓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을까?
나는 사람의 감정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다. 말하지 않아도 얼굴빛, 눈빛, 말투의 변화로 그 사람의 상태를 헤아린다. 어릴 적부터 나는 친구들의 말에 숨어 있는 미묘한 감정을 잘 눈치챘다. 이 때문에 상처받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 덕분에 누군가에게 더 배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민함은 때때로 세상을 더 복잡하게 느끼게 만들지만, 반대로 그만큼 더 풍부하게, 더 섬세하게, 더 진하게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나는 이 감각 덕분에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보통 사람들은 지나칠 법한 장면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예민함은 내가 피해야 할 결점이 아니라 조금 더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세상을 껴안는 능력이라고 정의 내리기로 했다.
더 이상 예민한 나를 숨기지 않고 그 예민함을 다른 사람과 더 부드럽게 연결되는 다리로 삼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자로, 따뜻한 공감의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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