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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Dec 07. 2021

수련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심리대학원이라 쓰고 어른들의 예체능이라 읽는다.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


대체로 심리를 전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특히 나처럼 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한 대학원에 가고자 한 사람들의 지원 동기를 살펴보면 상담을 통해 본인이 상처 받은 과정을 치유받고 그 도움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처럼 자신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선의의 마음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하였으나 그 끝을 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물리적, 시간적 투자가 필요하다. 


심리 대학원을 준비한다고 하였을 때, 먼저 대학원을 다니던 친한 언니가 그랬다. 


"여기는 어른들의 예체능이야. 단단히 마음먹고 시작해."


어른들의 예체능이라 표현함은 아마도 예체능 계열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부분이었으리라. 시간, 노력을 드려야 하는 부분도 비슷하겠지만, 막상 그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에 비해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적이라는 것, 본인의 능력과 성취만큼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 역시 비슷한 부분이다. 


어쩌면 수련 고지에 도달할 즈음에 기업 취업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입문하는 바람에 나는 중도 탈락한 수련생일 수도 있으나 중도 탈락할 지라도 거기까지 얼마의 비용이 들었는지는 아마 이 세계로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궁금증일 것 같아 준비해 보았다.




그래서, 얼마면 되니?

응, 이천 오백 십칠만이천 원 25,172,000원


이 글을 준비하며 계산해 본 대학원 2년 간의 순수 투입 비용이다. (상세 내역이 궁금한 분들은 이 글의 끝까지 읽어보시길) 어른들의 예체능이라 잔뜩 겁을 준 것에 비하면 뭐, 할만한 비용이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저 비용은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였던 2011년도 기준하여 투입된 금액으로 바야흐로 10년 전의 일이니, 현재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스무 살,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던 나에게 심리대학원을 선택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선택지 중에 하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반을 벌어 모은 돈으로 한 푼, 한 푼 아껴가며 생활하면서도 수련받고, 교육받는 비용에는 아낌없이 지출했다. 그래, 이거 하려고 스물넷, 다섯 힘들게 벌었으니 열심히 배워 내가 명품이 되어보자 싶었다. 그리고 생활비와 수련비, 학비를 벌기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이 시작된다. 의정부에 있는 대학교회에서 행정사무직을 하면서 주 3일 학교를 다니고, 짬짬이 상담 수련 시간을 채워 갔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천 만원보다 더 귀한 경험을 안겨 준다.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대학원의 학과 내규에는 1년 이상 놀이 치료한 케이스가 3 케이스가 있어야 논문을 쓸 자격이 생겼다. 때문에 대학원 3학기 때부터는 자원봉사로 다들 놀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대학원생을 놀이치료사로 봉사활동을 하게 해주는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전에는 고아원으로 불리던 보육원이라는 곳을 나는 그전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아원과 보육원의 차이도 모르고 있었던 시기였다. 케이스를 채우기 위해 서울 시내 3곳의 보육원을 컨텍했고, 각각 1명씩 총 3명의 아이들과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중 한 곳에서는 집단 심리치료도 진행하였다. 


대학원 3학기 차 학생이 뭐 대단한 스킬이 있을 리 만무하건만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는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아이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기에 정 붙이지 않는 것이 습관인 아이들이었지만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아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를 함께 치유해 가기 위해 쏟은 그 시간들이 아이들의 문제를 아주 조금씩 개선시켜가고 있었다. 꼭 대단한 기술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진심을 가지고 오롯이 관심과 사랑을 전달할 때 행동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6개월 간 미술치료 집단을 마치고 마지막 회기 작품 전시회 당일 사진. 같이 진행했던 윤진 언니랑 사비 털어 정성껏 마지막 회기를 세팅했던 그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_13년 7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성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나 하나가 조금 움직여서 아이들이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면 보다 체계적인 지원 체계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이들의 삶이 더 나아지리라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 글을 쓰며 잊고 있었던 이 전공을 시작하며 다짐했던 그 시절의 열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생활비에 학비에 빠듯했어도 소득의 11%는 헌금 포함하여 몇 군데의 기관들에 나눠 기부하며 살았다. 어쩌면 그때, 그 시절이 마음 부자였구나 싶다. 


역시, 뭐가 되든 이 글을 쓰길 잘했다. 11월 한 달 동안 바쁜 강의 일정으로 잠시 또 글쓰기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추억 소환하며 글을 쓰다 보니 이 길에 들어섰던 당시의 첫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10년의 비바람을 맞으며 퇴색되어 바랜 그 마음속 다짐들을 속속들이 꺼내어 다시 살려보아야겠다. 




[별첨 부록] 25,172,000원의 출처를 밝힙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2년 간 지출한 항목이 세상에,,14년도 메모장에 정리가 되어 있어 실질적인 비용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시간대별로 기록한 사항 공유해봅니다. (항목별로 합산해서 보여드릴까 하다가 시간대별로 보시는 것이 감을 잡기 더 나을 것 같아 이 형식으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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