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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Dec 24. 2021

나는 누구인가?

자아정체성을 알아야 하는 이유

"그럼, 언니는 언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니의 정체성이 뭐야?"
"나? 나는, 나! 그냥 홍길동, 나이지." (실명을 쓸 수 없어 홍길동을 잠시 빌렸다.)


나이가 들어 친구를 만나다 보니 대화의 주제도 심오하다. 

오래간만에 영국에서 들어온 친한 언니 그리고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뜬금없는 자아정체성 이야기다. 화두는 내가 던졌지만, 사뭇 지금 우리 삶의 갈등이 어디서 오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대단한 명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까지 올라가면 인간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아주 오래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진로 이론가인 Super의 이론의 핵심은 자아 개념(Vocational self)이다. 인간이 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자기 개념과 일치하는 일을 찾아간다고 말한다. 


<갈등해결의 지혜> 저자 강영진 갈등 해결학 박사님은 인간이 자신을 누구라고 인식하고 있는지 '자아정체성'을 잘 이해하고 나면 그 자아정체성을 침범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땅에 태어나 나를 잘 써먹기 위해서이든,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이든 나 자신이 스스로 나를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면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영아, 그럼 나는 너네처럼 누구누구의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우선순위가 아니고, 그냥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한 정체성인데, 그럼 이상한 건가?"
"아니, 나 스스로 누구냐고 정의하는 거에 좋고 나쁨은 없지, 그저 언니는 언니로서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데, 누군가로부터 000의 엄마 역할을 가장 먼저 요구받거나, 000의 며느리 써의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수행하라 그러면 그때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거지."   


언니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제야 자기가 이해된다 말한다. 그 먼 타지에서 아이를 낳고, 시댁 식구들과 살며 왜 이렇게 힘들었나 했더니, 나는 나 자신으로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충전할 수 있는데, 그 충전의 시간 없이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달려왔던 것 같다 말한다.  


이처럼 나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수많은 '나'를 정의하는 역할과 가치, 스타일을 인지함에 따라 내 삶에 변화를 꾸려야 하는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아래는 내가 나를 정의하는 나이다. 각각의 정체성은 우선순위가 있는데, 각 정체성이 충돌할 때마다 그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을 하게 된다. 


1. 크리스천
2. 웅이 정이 엄마
3. Facilitator
4. 전**씨 아내
5. 힐링스팟 대표
6. 전** / 장**님 며느리
7. 가** / 김**님 막내딸
8. 책 읽는 사람, 책 읽어 주는 사람
9. 글 쓰는 사람


예를 들어, 나는 교육하고,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Facilitator라는 정체성이 있는데, 교육 날짜와 시댁에서 김장하는 날이 겹쳤다고 해보자. 그럼 나는 우선순위상에 먼저 있는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김장 날짜를 바꿔달라 요청을 하든, 해당 날짜에 남편만 다녀오라고 하는 형태로 조정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워킹맘으로 살며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며느리 역할과 딸의 역할이 동시 요구될 때는 어쩔 수 없이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먼저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엄마가 집으로 오겠다 하였으나, 오늘은 시어머니가 계시니 내일 오시라고 조정하는 것을 보며 스스로 내가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덧붙이는 반성은 아직 나에게 '글 쓰는 사람'으로써의 정체성이 후순위이다 보니, 그 모든 역할들을 다 수행하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며 자꾸 글을 쓰는 시간이 뒤로 밀리고 있구나 싶다. 이래 가지고 글로 먹고살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냐 혼자 채찍질해본다. 


이런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도움이 된다. 나와 10년째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은 자기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전**/장**님의 아들"이다. 한 회사의 대표이자 두 아이의 아빠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기도 한 그에게 여전히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로써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바쁜 삶을 살다가도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병원 가야 하는 날이면 그 바쁜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맞춰서 병원에 다닌다. 올림픽에서 누가 금메달을 따기라도 하면 "아, 저 사람 부모님은 참 좋겠다."라고 말한다. 아마 내가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의 수많은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그 때문인지 남편은 내가 시댁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거나 챙기는 액션이 있으면 그렇게 고맙다, 사랑한다 말한다. 그의 정체성을 인정해주고, 그 정체성을 소중하게 생각해 줄 때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존 듀이-


존 듀이의 명언처럼 자아정체성이라는 것은 특정 시기에 형성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과 학습, 관계 내에서 배움을 통해 새롭게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와 일치하는 일도 찾고, 나와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리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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