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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스팟 Jan 11. 2022

아이의 애착 담요 졸업식

대상관계이론과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MBTI 유형 내 SJ 기질의 엄마인 나는 아이를 양육할 때 시기마다 나이마다 해야 하는 역할과 전통을 강조하는 편이다. 아이가 7세가 되면서부터는 표면적, 묵시적 초등학교 준비를 위한 압박하는 말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웅아, 여덟 살이 되면 엄마가 화장실에 있을 때 이제 불쑥불쑥 들어오면 안 돼. 
웅아, 여덟 살이 되면 엄마가 더 이상 옷 입는 거 도와주지 않을 거야. 혼자서 입어야 해
웅아, 여덟 살이 되면 똥은 혼자서 닦아야 한단다. 지금부터 연습을 좀 해야 해. 
웅아, 여덟 살이 되면 동생이랑 같이 씻지 않아. 너는 이제 아빠랑 씻는 거야. 


"여덟 살이 된다는 것"에 대한 To-Do list를 7세 때부터 익히 들었던 아들은 2022년 1월 1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묻는다. 


"엄마, 저 오늘 여덟 살이에요?"

"응, 너 오늘부터 여덟 살이야!"

"근데 왜 키가 그대로예요?"


아이의 말에 빵 터졌다. 하도 여덟 살은 다 큰 사람 취급했더니 아이 생각에는 여덟 살이 되면 갑자기 뿅 하고 커 버린다고 생각했나 보다. 키가 갑자기 커 버리는 것이 아니 듯, 아이의 마음과 준비도 차근차근해야 할 터인데, 늘 아는 것이 병인 엄마는 아이를 준비시키기에 분주하다. 


아이의 애착 담요 졸업식


웅아, 여덟 살이 되면 이제 담요도 졸업하는 거야~12월 31일부터는 담요도 이제 안녕하자!

갓 태어나 지금까지 만 6년을 동거 동락한 아이의 애착 담요 - 얼마나 물고, 빨고 했는지 이제는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다. 


많고 많은 To-do list 중 여덟 살 인생에 가장 큰 결심한 것 중 하는 태어날 때부터 사용했던 애착 담요와의 졸업이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가장 아낀 담요를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사촌 동생에게 주겠다 했다. 오빠가 된 웅이가 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웅이 입장에서도 담요와 영원히 안녕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심 아쉬울 것 같아 동생에게 주는 대신에 상자에 잘 담아두었다가 10년 뒤에 다시 선물해 주는 것으로 하였다. (물론 돌쟁이 사촌동생 입장에서도 다 떨어진 담요가 반가울 리도 없다.)


아이의 애착 담요 졸업식을 준비하며, 오래간만에 대학원 때 배웠던 전공서적을 꺼내 들었다. 애착 담요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블랭킷 증후군이 나오는데, 이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하다. 


출처 : 구글_블랭킷 증후군


만화 스누피에 나오는 라이너스가 담요를 들고 다니는 모습처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애착을 두고 찾는 대상(object)이 생긴다. 블랭킷 증후군으로 검색을 하면 뜻에 '집착'한다 든 지, 그냥 두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든지 해당 증상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 즈음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애착'을 갖는 물건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한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인간은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 욕구가 바로 인간 행동의 동기이며 성격 형성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본다. 인간을 관계지향적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기본적 동기를 갖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확립해 나가는 것이 인간 발달의 근간으로 보는데, 만약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대상관계를 상실하거나 상실할 가능성이 느껴지면 인간은 공포와 불안을 경험하게 되는 존재로 설명한다.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인간을 의미 있는 관계를 추구함과 동시에 개별화를 추구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인간이 관계지향적 존재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상실할 경우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만, 동시에 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면 자신이 누군가에 융합된 채로 살아가고 '먹혀 버릴 것 같은 불안(fear of engulfment)'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아의 능력을 활용하여 세계를 탐색하고 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여 지나치게 깊은 관계에 빠져 버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에 노출되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애착을 가진 물건에 대해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이를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 한다. 중간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상(object)'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데, 대상이라는 용어는 '주체(subject)'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주체가 '나'라면 '대상'은 주체가 관계를 맺고 있고 사랑, 미움 등의 정신에너지가 투영된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대상에는 사람도 포함이 되지만, 사물, 장소, 생각, 환상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조국에 대한 충성심'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상 개념에는 다양한 하위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외적 대상(external object)은 사회환경 내에 있으면서 직접 관찰이 가능한 실재하는 사람, 사물, 장소 등을 의미하고, 내적 대상(internal object)은 외적 대상과 관련하여 주체인 개인이 갖는 이미지, 생각, 환상, 감정, 기억 등을 포함한 전체적인 심상을 의미한다. 내적 대상은 개인이 초기 발달 단계에서 자신을 돌본 중요한 사람과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정신적 구조의 한 부분으로서, 초기 관계의 흔적이 남아서 자신의 성격의 일부분을 구성하게 된다. 


외적 대상과 내적 대상 중간 영역에 위치한 것 '중간 대상'이다. 태어나서 가장 중요하게 관계 맺는 대상-그 대상을 엄마라고 한다면 엄마는 외적 대상이고, 그 엄마를 향한 보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계속해서 같이하고 싶은 생각, 감정 등은 내적 대상이 된다. 우리 아들이 처음 어린이집을 가던 해, 엄마인 나를 인형처럼 조그맣게 만들어서 들고 다니고 싶다고 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곧 엄마는 소유물이 아니고 가지고 다닐 수 없는 한계를 깨닫고 엄마로부터 느끼던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대상을 찾아 애착을 갖게 되는 것_그것이 애착 물건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부모 중에는 '어? 우리 아이는 애착 담요, 인형 이런 것 없이 잘 컸는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애착을 형성하는 대상이 인형, 이불, 담요와 같이 물건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중간 대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자장가, 몸짓, 습관적 태도 같이 비물질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중간 현상'이라 말한다. 나의 아들은 중간 대상이 어릴 때 속싸개로 싸 둔 담요였다면, 둘째 인 딸은 중간 대상은 없었지만 아주 어릴 때 잠을 재워야 하면 내 머리를 만지면서 잠들 곤 했고, 조금 커서는 불안하거나 혼자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는 자신의 앞머리를 만지는 행동 등의 '중간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애착을 갖고 애지중지 하던 담요의 졸업식을 준비한 이유는 아이의 '개별화' 과정을 돕기 위함이다. 대상관계이론의 대 전제처럼 인간은 누구나 사람을 필요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은 인간 내적의 기본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자아의 능력을 활용하여 세계를 탐색하고 대상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개별화된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이 끝나는 데서 비롯된다." - 세네카


아이가 손 수 적어준 담요 졸업식  편지 "담요야,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작은 조각 케이크 하나에 촛불을 켜고 아이의 담요 졸업식을 축하하며 애착 담요는 잘 봉인(?) 해 두었다. 10년 뒤, 18세가 되는 생일에 다시 돌려주겠다 약속하였다. 


그리고 담요 졸업식을 거행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는 지금 애착 담요 없이 잘 잠들고, 잘 지낸다. 담요와 의미있는 관계를 맺으며 지냈던 어린 시절의 순간들은 잘 접어두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개별화된 인간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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