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누굴 닮았니?
전신정!!!!!!!!!!!!!!!!!!!!!!!!!!!!!!!!!!!!!!!!!!!!!!!!!
단전부터 끌어올린 목청으로 딸의 이름을 부른다.
지난 주 무리한 강의스케줄로 몸에 무리가 왔는지 주말 내내 감기약 먹고 병든 닭마냥 꼬대꼬대 엄마가 졸고 있는 틈을 타 아이가 그 길고 예쁜 긴 생머리를 겅중겅중 잘라냈다. 혼날 쭐 알고 있었던 것인지 처음에는 커튼 뒤에서 머리카락을 자른 모양이다. 그리고 엄마의 부재가 좀 길어지는 것 같자 좀 더 대범하게 안방 침대 앞에서 오빠와 미용실을 차려놓고 서로의 머리를 참도 예쁘게 띄엄 띄엄 잘도 잘라놓으셨다.
"아이 참, 엄마! 제가 머리가 너무 길잖아요? 그래서 조금 잘랐답니다!"
아오, 말이라도 못하면 모를까, 새침하게 또 능청스럽게 화난 엄마에게 다가와 미주알 고주알 설명하고 있는 우리 딸! 너, 도대체 누굴 닮은거니?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묻는다. 아동학을 전공한 것이, 아동심리치료학을 전공한 것이 육아에 도움이 되는지 말이다. 나의 대답은 반반이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생기니 아이를 키울 때 덜 초조한 것은 있다. 하지만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 역시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 것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만날 때 드는 자괴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대학원에서 <놀이치료> 시간에 귀에 박히도록 듣는 개념은 도널드 w. 위니컷의 '충분히 좋은 엄마'이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어 주어 아이에게 버텨주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위니캇의 대상관계이론의 핵심이다. 부모가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경우 치료의 과정을 통해 적절한 성공경험과 좌절경험을 안전한 치료실의 환경안에서 재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치료의 매커니즘이다.
아동학을 전공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만 5년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심리학의 몇 몇 개념을 공유하자면 첫 번째가 저 '충분히 좋은 엄마'에 대한 관점이다. 금쪽 같은 내 사랑을 얻고 나서 사랑으로만 키워도 부족할 시간에 단전부터 끌어올린 목청으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보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아이를 지켜보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왜 본인이 꼬대꼬대 졸아놓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이 화는 아이를 향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 자신을 향한 화였으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완벽함과 부족함 흑백논리의 양쪽 어딘가가 아니라 '충분함'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육아의 여정에서 대단히 위로가 된다. 부족함에 더 가까운 엄마이지만 그래도 완벽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가는 그 과정 가운데 아이에게 적정 수준의 사랑과 결핍이 제공되어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그런 엄마가 되어 간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해 간다는 것 그것이 이 전공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도움이 되는 첫 번째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써 먹는 심리학의 개념은 '기질'이다. 기질은 성격과도 구분하여 사용하는 개념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는 후천성보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개인의 고유한 성질을 이야기 한다. 기질을 구분하는 형태는 학자마다 상이하여 이 글에서 다 다룰 생각은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도움을 받은 데이비드 키얼스의 기질 이론을 소개한다.
딸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누굴 닮았냐 외쳤지만, 부인할 수 없도록 나의 딸 아이는 나를 쏙 빼 닮아 있다. 생김새는 아빠의 탈을 쓰고 있지만 영락 없이 나를 닮아 있다. 만 4세 그래, 딱 지금의 딸 나이에 나도 아빠 면도날 가지고 내 눈썹을 몽땅 밀어버려 모나리자가 되어 눈썹이 다 자랄 때까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거늘 단발 정도의 길이는 남겨두고 머리카락을 자른 딸 정도야 양반이다 싶다.
나는 MBTI 성격유형상 ESTJ고, 데이비드 키얼스의 구분에 따르면 SJ 보호자 기질의 사람이다. 기능은 청소년 시기 즈음 되어야 구분이 명확해지다 보니 16가지 성격유형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기질적 관점에서 아이를 바라보자면 아이의 행동 특성을 관찰하는 것으로도 아이의 기질을 발견해가기 어렵지 않다.
SJ 기질을 데이비드 키얼스는 처음에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 기질로 묘사하였다가 나의모습 나의 얼굴 개정판에서 데메테르 기질로 변경하여 소개한다. 데메테르는 대지의 신으로 대지에서 자라는 곡물을 주관하는 신인데 그가 파업하는 시기에 겨울이 온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그 특징들을 가져왔다.
#책임 #의무 #소속감 #공동체 의식 #철두철미 #질서정연 #관리의가치 #마감기한중시
데이비드 키얼스는 사람의 기질을 네 가지로 분류하는데, SJ 기질은 네 가지 기질 중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이 기질의 사람들은 믿음직스럽고, 안정감을 주며 신뢰할 수 있고 일을 열심히 하며 스스로 동기 부여 한다. 또한 목적 지향적이며, 위계질서에 순종적이다. 보호자형 사람들은 순리에 따르는 것을 선호하고, 다른 사람들의 물리적인 욕구를 잘 알아채며, 의미 있는 전통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어떤 전통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보호자들은 종종 전통을 직접 확립하고 유지할 것이다. 때때로 이들의 모습은 엄격해 보이기도 하고, 걱정이 많으며, 판단을 빠르게 내리고, 변화에 저항하는 듯 하다. 그들은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 하기도 한다.
- 출처 : 나의 모습 나의 얼굴
SJ 기질의 사람들은 여행을 갈 때면 이 보호자 기질이 빛을 바란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꼼꼼하게 챙기다 못해 이 정도면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이 것 저 것을 챙겨간다. 우리 딸은 만 3세 때도 할아버지 댁 내려가자 하면 가방에다가 자기 오빠 양말이랑 속옷, 요구르트까지 바쁘게 챙기곤 하였는데 기질이라는 것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게 해 주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Q) 만약 보호자형(SJ)이 세상에 없다면?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로 엉망이 될 것이다. 명확한 표준은 어디에도 없으며, 여러 가지 일은 완결되지 않은 채로 남겨질 것이다.
세상에 SJ 기질들이 없다면 아마 세상은 "안정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기질의 사람들은 시간과 일정을 정확히 지키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스스로 자신의 일과에 대한 계획을 짜고 그 일정을 따라가고 있을 때 굉장히 행복해 한다.
나와 비슷한 기질의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편한 것은 있다. 아이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려는지 비교적 예측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존감이 높은 부모일 수록, 또 기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모일 수록 자신의 모습을 강요하기 쉬워질 수 있다. 자신이 이룬 방식대로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비슷한 기질이라면 큰 불편함 없이 양육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모 자신과 다른 기질의 아이를 키우게 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모-자녀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다른 기질의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SP 기질 아들 키우기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