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 결심당일 피고인은 최후진술을 한다.
검사님이 "피고인에게 ~형을(예를 들어, 징역 3년을) 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구형을 하면,
변호인이 피고인을 위한 최후변론을 하고,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최후진술을 한다.
위 최후진술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거의 모든 피고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제 잘못을 반성합니다.
필자가 국선전담변호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필자가 변론한 사건이 결심을 해서 검사님의 구형, 필자의 최후변론,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있었다.
그 후에 담당 검사님과 우연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검사님은 필자가 변론했던 그 피고인을 지칭하면서
"그 피고인 최후진술을 들어보니까, 아직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라고 말씀하셨다.
검사님이 지칭한 그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분명히
"제 잘못을 반성합니다"
라고 진술했었는데,
검사님은 그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듣고 그 피고인이 아직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현실이 교과서인 줄 알았던 변호사 초창기 시절의 필자는,
처음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어 피고인들을 변론할 때는 피고인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피고인들이 "억울하다"라고 하면, '억울한가 보다'라고 생각했고,
피고인들이 "반성한다"라고 하면, '반성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검사님의 말씀을 듣고 마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한 12년 동안 수천 건의 형사 사건을 변론하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교과서와 현실이 다르고, 어찌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피고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글(반성문 등)에는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 마음은 진실한 마음도 있었고, 거짓된 마음도 있었다.
진실한 마음이든, 거짓된 마음이든,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거의 모든 피고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제 잘못을 반성합니다.
이다.
하지만, 그때 그 검사님의 말씀처럼,
피고인들이 아무리 "반성한다."라고 최후진술을 하더라도, 모든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변론경험이 늘어갈수록,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들으면,
1) 그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진술하고 있는지,
2) 그 피고인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사람인지, 아니면 재범할 가능성이 적은 사람인지 등
최후진술을 하는 피고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있다.
그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반성합니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 피고인은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던,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었다.
그 피고인은 연상의 여자룰 알게 되고 사귀게 되었는데
그 여자가 사업이 어려워지자 피고인을 찾아와 도와달라면서
"도와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
고 하였고,
피고인은 그 여자를 도와 중국으로 가 보이스피싱을 도왔다.
결국 검거되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 피고인은 항소심 재판을 받으며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처벌을 받게 된 원인이
그 여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벌받는 이유는
그 여자 때문이 아니라,
쉽게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필자는 위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듣고,
그동안 형사법정에서 수천번은 더 들어왔던 “반성합니다.”라는 말보다 더 진실한 반성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한 마음에는 사람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