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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갯벌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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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Oct 20. 2023

갯벌소녀와 순이

3


 “단비야~! 덕구야~!”

 “철이야~!


 저 멀리서 소녀와 강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새들이었다. 소녀는 무리들의 대장인 철이의 이름을 부르며 철새들을 반겼다. 철새들은 섬에 다다르자 각자의 영역으로 흩어졌다. 몇몇은 갯벌 위에 안착했고, 몇몇은 숲으로 날아들었고, 몇몇은 습지로 숨어들었다. 소녀는 작년 보다 몸집이 훌쩍 커진 새들을 보고 놀랐지만 이내 달려가 안아 주었다. 오랜 친구들과 반가운 재회였다. 친구들은 어느새 가족을 이루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다. 소년과 강아지는 새로 태어난 아기 새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어떤 세상을 보고 왔어?”


 소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철새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섬 전체를 덮을 만큼 큰 나무가 있다면 믿을 수 있어?”


 소녀는 믿을 수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이 커졌다. 이는 넓은 세상을 향한 동경과 호기심이 가득한 표적으로 이야기를 재촉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곳 어딘가에 엄청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섬 전체에 붉은빛이 황홀하게 타오르는 듯하더니 곧 어둠이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섬은 밝게 빛났다. 숲 너머로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고, 하늘에는 별들이 각자의 빛을 뿌리며 하늘 위를 굴러가고 있었다. 철새들과 소녀의 수다는 밤새 이어졌고, 그 위에는 환한 달이 반짝였다. 자연이 내려준 평화와 안녕이 안온하게 내려앉았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 갯벌을 소녀는 사랑했다.

 며칠 후 계절이 바뀔 무렵 철새들은 떠날 준비를 했다. 이 철새 무리들이 떠나고 나면 또 다른 철새들이 찾아올 것이었다. 소녀는 새들이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고 다녔다. 섬 주변을 돌며 다음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고 인사했다. 연례행사처럼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웃는 얼굴을 주고받으면 될 터였다. 하지만 그 해는 조금 달랐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소녀의 오랜 친구이자 철이의 아내인 순이가 기침을 해댔다. 처음에는 가벼운 기침을 하더니 기침소리는 나날이 크고, 거칠게 변해갔다. 머리만 흔들던 기침은 이내 순이의 몸 전체를 흔들어 댔다. 철새 무리가 떠날 날이 다가와도 순이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차도 없는 순이의 몸상태와 달리 계절은 변화할 준비를 마쳤고, 철새무리들은 이제 먼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는 순이는 더 이상 날지 못했다. 며칠간 비행을 해야 하는 무리에 비해 순이는 고작 1분 정도의 비행이 한계였다. 소녀가 사는 곳에 바뀐 계절이 찾아오면 철새들은 살 수 없었다. 무리는 결국 순이와 헤어져야 했다.


 “철이야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순이는 내가 잘 돌보고 있을게.”


 소녀는 철이를 비롯한 철새무리들을 위로했다. 철이가족들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철이가 먼저 날아올랐고, 다른 무리들이 철이를 뒤따랐다. 새끼들은 엄마와 한참을 안고 있더니 무리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날아올랐다. 할 수 없이 새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새들은 출발하기 전 섬 주변을 몇 번씩 돌았다. 적당한 간격을 이루며 수십만 마리가 마치 한 마리인 냥 움직였다. 바람의 움직임인지, 하늘 위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인지 모를 새들의 군무를 보며 소녀는 잘 가라고 인사했다. 어느덧 새들 무리는 섬보다 더 거대해져 있었다. 거대해진 한 마리의 새 처럼 움직였다. 새들의 무리 틈새로 붉은 석양이 빛났고, 새들은 감사와 슬픔의 인사를 건넸다. 새들은 한참 동안 섬 위를 날며 소녀에게 감사인사를 전했고, 무리에서 떨어진 순이에게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의 언어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철이가 순이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무리 전체에게 소리쳤다. 새들은 장엄한 형태를 이루며 섬을 떠났다.

 순이는 떠나간 무리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무리가 사라진 뒤에도 날아간 방향을 한없이 보고 있었다.


4

 계절이 바뀌어 또 다른 철새들이 찾아왔다. 겨울 철새들이었다. 겨울 철새들은 못 보던 새가 있어서 호기심에 말을 걸어 봤지만, 그 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절벽 너머 먼 곳을 하루종일 바라보았다. 가끔은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 새는 밤이면 소녀의 집에서 잠이 들었지만 해가 뜨면 제일 먼저 절벽 위에 올라 같은 방향을 계속 바라보았다.

 해가 짧아지며 날은 점점 추워졌다. 소녀의 볼을 스치는 바람도 점점 차가워졌고, 소녀는 점점 순이가 걱정 됐다. 아직은 날이 많이 춥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겨울이 오면 순이는 계절을 나기 힘들 터였다. 순이는 매일같이 가족들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한 번은 가족들이 날아간 방향으로 날개 짓을 해봤지만 금세 숨이 차 올랐다. 1분은커녕 이제는 10초도 비행을 하기 힘들었다. 이대로는 순이의 건강이 더 악화될 것 같았다. 순이는 당장 따뜻한 실내에서 생활해야 했다. 소녀도 이를 알았다. 하지만 소녀는 애써 순이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소녀는 옆에 있어 주었다.

 아침저녁으로 점점 쌀쌀해지던 어느 하루. 어김없이 순이는 섬의 한 절벽 끝에 다다라 가족들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고개가 숙여질 때쯤 소녀가 옆으로 다가왔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순이 옆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그리고 함께 담요를 덮었다. 순이는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절벽에서 처음으로 텅 빈 하늘이 아닌 곳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소녀의 강아지가 담요를 파고들었다. 순이는 소녀와 강아지를 번갈아 보았다. 소녀는 순이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순이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이 작은 생명체들은 서로 살을 맞대며 무언 속에 피어난 온기를 느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순이 옆에는 늘 소녀와 강아지가 함께 했다. 하지만 여전히 순이의 기침이 잦아들 기미가 안보였다. 소녀는 슬슬 순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계절의 순환 앞에서는 셋이 나눈 온기도 그 힘을 잃어 갔다.

 순이가 기침을 하던 와 중 절벽의 다른 한 곳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만 생기 가득한 소리였다. 소녀와 순이와 강아지는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아기 겨울 철새들이었다. 두 아기 새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소리를 내며 절벽 근처에서 뛰놀고 있었다. 순이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함과 동시에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더 짙게 느꼈다. 바로 그때 아기 새 한 마리가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졌다. 날개를 퍼덕이며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절벽 밑에서부터 불어오는 강한 상승기류 탓에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어떤 기류든 마음대로 가지고 놀며 비행하기에는 아직 몸집도 작고, 비행 경험도 부족했다. 그 아기새는 결국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소녀는 놀라며 소리쳤고, 소녀의 강아지 또한 크게 짖었다. 그때였다. 순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몸을 내던졌다. 솟아오르는 기류를 가르며 순이는 빠르게 강하했다. 아기 새는 마치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순이와 아기새의 거리가 근접해 갈수록 순이의 숨은 가빠졌다. 거센 기침이 올라왔지만 온 힘을 다해 억눌렀다. 숨이 가빠오고, 자신 또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럴수록 아기새에게 집중했다. 3m, 2m, 1m. 아기새가 절벽 밑의 바위와 충돌하기 전 순이가 아기새를 낚아챘다. 아기새를 낚아챔과 동시에 그 흐름을 이어 갯벌 쪽으로 몸을 틀었다. 힘이 빠져 비행을 더 지속할 수 없는 순이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순이는 갯벌 위에서 몇 번을 굴렀지만 품에 안은 아기새를 놓지 않았다. 곧이어 겨울 철새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천천히 순이의 눈이 떠졌다. 아기새는 아직이었다. 아기새의 숨이 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기새가 기침을 했다. 막힌 숨통이 트인 양 헐떡 댔지만 곧 기운을 차렸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던 소녀와 강아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겨울 철새무리들은 연신 순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날부터 순이는 소녀의 집에서 생활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순이의 건강은 점점 좋아졌다. 소녀는 지극 정성으로 순이를 보살폈다. 순이는 점점 기침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이는 여전히 웃지 않았다. 순이는 늘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가족이 그리운 만큼, 하늘을 날고 싶은 만큼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만약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더 이상 날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는 자신이 인간과 함께 실내에 살게 된다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았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동물적 본능이 순이에게 ‘이대로 라면 비행하는 법을 잊어버릴 거야’라고 경고를 하는 듯했다.  

 소녀의 보살핌 덕분에 순이는 완전히 기침을 멈추었다. 예전처럼 비행을 해도 숨이 차지 않았다. 순이는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있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당장 찾아가기에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그 추위를 뚫고 따뜻한 계절이 있는 곳까지 비행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 순이는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몇 번이고 섬 주변을 날아 보았지만 견딜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순이는 그렇게 설계된 자연 종이였다. 순이 또한 거대한 자연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작은 생명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순이는 체념할 수 없었다. 가족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자신이 비행하는 법을 잊어버린 상태라면 또다시 생이별을 해야 할 것이었다. 순이는 겁이 났다. 수 천 킬로미터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비행하는 자신의 무리에 비해 고작 수십 킬로밖에 날지 못한다면 결국 무리와 함께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자신의 비행 본능을 잊지 않기 위해. 가족들과 재회했을 때 함께 비상하기 위해. 순이는 매일 추위를 견뎌 가며 섬 주변을 조금씩 날아다녔다. 소녀는 순이가 조금이나마 따뜻한 시간에 비행 연습을 했으면 했다. 소녀는 갯벌 한 곳에 나뭇가지 하나를 꽂은 뒤 하얀 조약돌과 빨간 조약돌을 놓으며 알려주었다. 막대기의 그림자가 하얀 돌과 빨간 돌 사이에 있는 동안만 비행 연습을 하라는 것이었다.

 순이는 막대기의 그림자가 일정한 방향에 이르자 여느 날처럼 비행연습을 하러 나가려 했다. 창 밖을 나서려는 순이를 소녀가 멈춰 세웠다. 곧이어 겨울 철새 무리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순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겨울 철새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무리들 사이에서 작은 아기새 두 마리가 무언가를 물고 나왔다. 얼마 전 자신이 구해준 겨울 철새와 그 형제였다. 이 형제들이 물고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겨울 철새 깃털이 촘촘히 붙어있는 물건이었다.


 “순이야 네 옷이야. 이 옷을 입으면 아마 덜 추울 거야. 여기 있는 겨울 철새들이 다들 자신의 깃털을 하나씩 나눠 주었어. 그리고 우리 덕구 털도 조금 있어.”


 순이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울었다.

 여름 철새인 자신이 월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 순리에 어긋나면 어김없이 대자연이라는 어머니는 순리에 따라 그 삶을 거두곤 했다. 자신 또한 순리에 벗어났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곧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순이의 비행은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큰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순리에 벗어난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것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함께 했다. 하지만 순이는 여전히 어머니 대지의 자녀였다. 거대한 어머니 품에서는 그 어떤 종도 그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순이에게 새로운 친구들을 안겨주며 순이가 그 정체설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다. 가이아는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겨울 철새들은 순이의 고민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순이가 보여준 종을 뛰어넘는 모성애에 보답하고 싶었다.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써 서로 건네는 친절이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종에게 건네는 연민이었다. 겨울 철새들은 다른 생명체를 아끼는 행동이 결국 자신들을 아끼는 행동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후로 겨울 철새들은 순이의 비행을 도와주었다. 우선은 순이가 더 오랫동안 비행연습을 할 수 있도록 순이의 비행연습 시간이면 함께 날아 주었다.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흰돌을 가리킬 때쯤이면 순이와 겨울철새 무리 몇몇이 나뭇가지 주변에 모여들었다. 겨울 철새들은 순이와 함께 대형을 이루며 무리에 섞여 나는 연습을 도와주었고, 날이 유독 추운 날이면 옆에서 온기를 나누며 비행했다. 순이는 더 오래 비행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찾아와도 무리 없이 수천 킬로를 한 번에 비행할 수 있도록 매일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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