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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da-da, 또 물보라를 일으켜

by Ted 강상원

여행 전 애들레이드에서 즐길 수 있는 투어 상품을 알아봤다. 글레넬그(Glenelg) 지역에서 돌고래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투어가 있었다. (애들레이드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돌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말에 꽂혀 바로 예약했다.


늦은 밤 애들레이드(Adelaide)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와 예약해 둔 백패커로 갔다. 피곤한 마음에 침대에 쓰러졌지만 몇 시간 뒤 일어나야 했다. 돌고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이른 시각까지 글레넬그 비치(Glenelg Beach)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호주는 새벽부터 운행하는 대중교통 따위는 없었다. 이곳은 대중의 서비스보다 개개인의 삶이 중요한 나라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머물던 백패커에서 글레넬그 해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 새벽 어스름도 하늘을 물들이지 못한 시각이었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이 시간에도 문 연 곳이 많고,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겠지만 역시 호주는 조용했다. 그 조용하고 어두운 도시를 혼자 걸으니 그 또한 생소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마치 거대한 테마 마크를 통째로 빌린듯했다. 고요함이 잠식한 이국적인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나 홀로 도시의 매력을 고스란히 누렸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텅 빈 거리에서 누리는 충만한 자유로움이 추위를 막아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침도 여명도 영영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내 마음을 도시가 알아챈 듯했다. 점점 밝아오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는 못했지만 나 외에 누구도 그 거리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글레넬그 해변까지 가는 내내 홀로 거리를 누볐다.


예상한 것보다 글레넬그 해변에 일찍 도착했다. 가로등 불빛이 꺼지고, 조금씩 푸른 어스름이 해변과 그 마을을 뒤덮었다. 문제는 조금 쌀쌀했던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해뜨기 전 바닷가는 날씨는 정말 추웠다. 투어가 시작하려면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여전히 문 연 가게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한국이었다면 편의점에 들어가 뭐라도 먹으면서 쉬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콧물이 나기 시작했고,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머리도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몸살 기운임을 직감했다. 이대로라면 몇백 불씩 지불한 투어 참여는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투어 시작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했다. 그 후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해가 밝아오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호주는 일교차가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태평양,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평지를 있는 그대로 질주한다. 이런 칼바람은 아침저녁에 더 날카로워진다. 반대로 해가 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해진다. 이 때문에 체감상 일교차가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난 2년간의 호주 생활로 이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글레넬그 비치가 밝아지며 서서히 주변과 내 몸이 따뜻해지는 경험은 신비로웠다. 어느새 글레넬그 비치는 쨍쨍하고 화사한 햇빛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다. 내 몸에도 치유의 빛이 내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추위, 콧물, 두통이 싹 가셨다. 몸살 기운 같던 오한과 그로 인한 불안감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기한 당혹스러움과 함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어 비용이 헛되이 날아갈 뻔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착장에 여행 바우처에서 확인한 배가 보였다. 요트 앞에 투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승선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배 위로 올라섰다. 그 순간 지난해 인도양에서 랍스터를 잡던 일이 잠시 스쳐 갔다.


요트는 곧 시원한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여행객들은 사진을 찍고, 바다를 관찰하며 투어를 즐기기 바빴다. 대부분이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유독 독일 사람이 많았다. 요트 직원들은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바다를 관찰하며 돌고래 무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직원이 먼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돌고래 무리였다. 먼 곳에서 돌고래 무리가 물 위로 점프하며 즐겁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귀엽고 매끄러운 곡선의 자태가 수시로 수면 위로 둥글게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생의 율동이 주는 감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어느새 돌고래 무리와 가까워졌다. 직원들은 요트 주변에 돌고래 먹이를 뿌렸다. 돌고래들은 그 먹이를 따라 요트 양옆으로 함께 헤엄쳤다.


항해를 잠시 멈추고 직원들의 안내가 있었다. 승객들은 구명조끼와 스노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선미로 향했다. 선미에는 밧줄 몇 개가 꼬리처럼 길게 달려 있었다. 각각의 꼬리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여행객들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어서 차례차례 밧줄에 매달렸다. 밧줄에는 사람들이 잡기 쉽게 중간중간 매듭이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출렁이는 물결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밧줄을 꽉 잡은 것을 확인하자 배는 다시 출발했다. 나를 비롯해 투어객들은 배 뒤에 굴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갔다. 배는 위험하지 않게 적당한 속도로 나아갔다.


몇 분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배 주변으로 다시 돌고래들이 나타났다. 직원들이 돌고래 무리 근처로 가 바다에 먹이를 뿌리며 유인했다. 돌고래들은 어느새 사람들 바로 옆까지 와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놀란 마음에 밧줄을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바로 눈앞에서 돌고래가 수면 위로 무지개 같은 반원을 그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이내 고개를 숙여 얼굴을 바다 밑으로 담갔다. 바다 밑은 새파라면서도 투명했다. 푸른빛이 온 세상을 감싸면서 동시에 구석구석을 비췄다. 그 푸른 세상에서 돌고래들이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었다. 몇몇 돌고래들은 튀어 오르기 바빴고, 몇몇 돌고래들은 유영하기 바빴다. 그중 한 돌고래가 위로 튀어 오르지 않고, 내 옆에서 속도를 맞춰 헤엄쳤다. 손이 닿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지만 제법 가까웠다. 흥분된 마음이 착시를 일으킨듯했다. 마치 돌고래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웃는 돌고래에게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쉽게도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날따라 돌고래가 많이 안 나타난 날이었다. 그 순간을 제외하곤 이동하기 바빴다. 돌고래 무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투어 직원들도 오늘 유독 돌고래들이 안 나타나는 날이라며 “Unlucky Day”라고 했다. 운이 좋다면 수백 마리 돌고래가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찰나의 경험에 아쉬워하며 그날의 투어를 마무리했다.


배가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예쁜 바다를 관찰했다. 유독 독일 관광객이 많아서 독일어가 자주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국민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해외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으레 하는 인사 비슷한 행동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어디서 왔어요?”, “아드(따)님이에요?”, “두 분은 만난 지 얼마나 됐어요?” 등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호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 중 하나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했다.


그중 한 독일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녀는 나처럼 워홀러가 아닌 평범한 관광객이었다. 그녀 또한 혼자 여행하는 중이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배가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덧 배는 글레넬그 해변에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하고 글레넬그 해변을 둘러보려 했다. 그때 그녀가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조금 전 배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다른 독일인 관광객들에 갔다. 몇 마디를 하곤 다시 내게 다시 왔다.


“Would you like to grab a coffee?”(커피 한잔할래요?)


글레넬그 해변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한 카페로 갔다. 서양인을 만나면 재밌는 점이 있다. 누구도 내 나이를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들 나를 어리게 봤다. 절대 동안이 아닌 나는 그들에게는 늘 어려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대략 7~8살쯤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를 자기 또래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여행하러 온 그녀는 내 워킹홀리데이 경험을 재밌어했다. 지난 2년간 겪은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듣고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도 그녀의 고향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야기가 즐거웠지만, 더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둘 다 머리와 몸에 소금기가 가득해 빨리 씻어야 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숙소 근처까지 바래다주었다. 짧은 포옹과 함께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그녀는 내 경험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내 과거에 모험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말하기 부끄러운 지난 발자취에 호기심을 가졌고, 본인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수치스러운 삶의 흔적인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에겐 영감이 되었다. 내 경험을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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