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안에서 얌전히 놓여있던 연습복과 슈즈를 챙겨 무용홀로 향했다. 연습복에는 오래된 옷장 냄새가 났다.
15년을 넘게 입었던 타이즈지만 역시 오래간만에 입으니 어색하다. 다리에 달라붙는 타이즈가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매트에 누워 찌뿌둥한 몸을 천천히 늘렸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나의 손은 습관적으로 오른쪽 정강이를 만지작거렸다. 부상 부위를 쓰다듬는다고 해서, 마시지를 해준다고 해서 금이 간 뼈가 붙게 되는 건 아니지만 작년 부상 이후로 내겐 정강이를 만지는 습관이 생겼다.
몸을 충분히 풀고 따뜻하게 데웠다. 오늘은 다시 발레를 시작하는 첫날이니 바를 잡고 Plie까지 하기로 했다. 발레 슈즈를 꺼냈다. 작년부터 신은 슈즈였다. 여전히 깨끗한 슈즈. 새삼스레 무대에 서지 못한지 1년 반이 넘어간다는 사실이 크게 느껴졌다. 우울한 생각은 해서 뭐하나. 머리를 휘젓고 훌훌 털어내며 슈즈에 발을 집어넣었다.
고무신을 신은 것 같았다. 맞지 않은 신발을 신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발에 적응시키기 위해 슈즈를 신은 채로 홀을 걸어 다녔다. 발이 부었는지 슈즈 안에서 발가락이 숨을 쉬지 못하고 쪼그라들었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슈즈가 나를 거부하기라도 하는 걸까. 고작 2년도 안 되어서 슈즈와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 나도 다 알고 있다. 당연히 오래 쉬었으니 다시 춤을 추려면 쉰만큼, 그 배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 정도로 발레 슈즈가 멀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수도 없이 마음을 다잡아 왔던 나였지만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슈즈, 슈즈.... 속으로 계속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어릴 적에 썼던 시 하나가 떠올랐다. 집 책꽂이를 뒤적거렸다.
발레 슈즈에 대해서 쓴 시다. 2010년이니 내가 12살 때.
<내 슈즈는>
내 슈즈는 친구다.
발레 클라스를 할 때
항상 내 옆에 있는 친구이다.
내 슈즈는 무기다.
전쟁을 할 때
내 옆에 꼭 있어야 할 총처럼
꼭 있어야 할 무기이다.
내 슈즈는 어제의 땀방울이다.
어제 흘렸던 땀방울이 담긴
미래의 꿈이다.
참 귀여운 시다.
시처럼, 슈즈와 나는 영원한 단짝처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친구이자, 무기이자, 땀방울이었던 나의 슈즈에게.
부상 전처럼 곧바로 가까운 사이가 될 순 없겠지만, 다리가 모두 나아서 다시 무대로 돌아갈 쯤에는 내 곁으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