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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Jul 26. 2021

파세 뚜르 앙 레르

(passe tour en l'air)


모든 일에 있어서 자만심은 가장 위험한 길로 빠지게 되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만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준다.     


다행히도(?) 나는 어릴 적에 그 깨달음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9살 때 성공적으로 첫 발레 콩쿠르를 마쳤다. 그리고 몇 번의 콩쿠르를 더 나가면서 발레에 더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의 첫 발레 작품은 ‘바람둥이는 보라색을 좋아해’라는 창작 작품이었다. 그때 영상을 찾아보면 참.... 웃기고, 귀엽다.    

 




문제의 그 콩쿠르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고양예고 무용경연대회’. 예선과 본선으로 나누어져 있는 콩쿠르였다. 예선은 깔끔하게 잘했고 본선에 진출했다. 예선을 마치고 사람들이 내게 와서 너무 잘한다고, 귀엽다고, 영재 같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가슴 한쪽에서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본선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더 듣고 싶어서 다음 본선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할 시간에 콩쿠르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때의 내가 자만에 빠졌다는 것을, 사건이 벌어진 후에야 깨달았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콩쿠르장 연습실을 구경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지만, 사람들이 흐뭇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물론 그것 또한 내 착각이었겠지만.) 연습실은 콩쿠르 준비로 분주했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형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 형이 하는 연습을 지켜보았다.     


그 형이 연습하던 동작은 ‘파세 뚜르 앙 레르’였다. ‘파세(passe)’는 ‘지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동작으로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무릎 앞에 두는 자세를 말한다. 그리고 ‘뚜르 앙 레르(tour en l’air)’는 ‘공중회전’이라는 뜻으로 공중에서 1, 2차례 회전하는 동작이다. 그렇게 두 동작을 합친 ‘파세 뚜르 앙 레르’는 파세를 한 상태로 공중으로 점프하여 회전하는 동작을 뜻한다.     


열심히 연습하는 형을 보던 나는 ‘나도 한 번 해봐야지!’란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쉽게 성공할 것만 같았다. 나보다 훨씬 큰 형이 하는 동작을 한참 어린 내가 해낸다면 사람들이 더 깜짝 놀라겠지. 멋지게 뛰어 착지해서 얼른 칭찬을 듣고 싶었다.     


‘파세 뚜르 앙 레르’는 9살밖에 안된 어린 남자아이에겐 무리한 테크닉이다. 하지만 이미 자만심으로 가득했던 나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 형을 따라서 높게 점프를 뛰며 돌았고, 착지했을 땐 이미 일은 벌어졌다. 발등으로 잘못 착지해서 인대가 늘어나 버린 것이다.     


그다음부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울면서 선생님 품에 안겨 돌아왔다. 발등은 퉁퉁 부어있었다. 본선 시간을 점점 다가왔다. 기권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난 끝까지 본선을 하겠다 고집을 부렸고, 무대에서 절뚝거리며 엉망진창으로 춤을 추었다. 결국 콩쿠르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절대로 우쭐거리거나 자만하지 않기!

백번의 조언보다 한번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겪어보는 것이 마음에 크게 와닿는다.

이때 이후로 항상 겸손과 자신감을 가까이하고, 자만심은 절대 생기게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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