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나의 아이가 내 꿈을 꺾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에 우울했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마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처럼 구덩이에 걸려 넘어지게 하고, 나무뿌리에 걸리게도 하고 계단 오르기도 힘들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첫째 아이에게 가장 못난 모습을 보여줬다.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던 시기. 코로나로 인한 고립과 우울, 낯선 부산 생활, 그리고 고부갈등.. 이 모든 최악의 시기를 함께 보냈기에 가장 예쁘고 사랑만 주어야 할 시기에 아이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다.
그래도 항상 엄마가 예쁘다고, 엄마 사랑한다고, 안아달라는 첫째 아이를 보며 나도 우리 엄마처럼 연우에게 상처를 대물림하는 것이 아닌지 나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린다. 사과해야 한다.. 엄마답지 못했음을.. 그리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진심으로 마음껏 해야 한다.
내 아이는 약시이다. 5살 때 처음 약시를 발견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화가 났다. 왜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걱정하며 자책했다. 밤낮 책을 읽어준 내 잘못인 것 같아 한동안 책도 못 보게 했다.
약시가 회복이 안된다면 불편한 눈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그리고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시력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꿈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아이는 한쪽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무서웠다고 했다. 나는 필요하다면 내 눈이라도 떼어주고 싶었다.
지금 아이는 안경을 끼고 재활 훈련 중이다. 아이는 유치원에도 눈 테이프를 붙이고 있는 아이가 있어 괜찮다고 했다. 아나톨이 겪은 시선과 상처를 다행히 아직은 아이가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나톨은 어디를 가든 달그락 거리는 냄비를 항상 끌고 다닌다. 그 냄비 때문에 아나톨은 평범해질 수도 없고 모든 것이 불편하다.
아나톨은 상냥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도 사랑하는. 잘하는 게 아주 많은 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 냄비만 쳐다본다.
냄비 때문에 강아지가 달려들기도 하고, 구덩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냄비가 나무뿌리에 걸려서 친구들보다 늦게 도착한다. 계단 오르기도 잘 안되고.. 아나톨이 평범한 아이가 되려면 남들보다 두 배나 더 노력해야 한다.
화도 내고 나쁜 말도 하고 친구를 때리기도 한다. 냄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결국 숨어버리기로 했다.
깊은 우울과 절망.
하지만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아나톨은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잘하는 것과 무서운 것도 표현하며 예전의 밝은 아나톨이 된다. 아주머니가 선물해 준 냄비를 넣는 작은 가방 덕분에 이제는 걸리지도 잘 보이지도 않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놀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이에게 아나톨에게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아주머니가 되어야 한다. 나 또한 둘째 출산 후유증으로 인해 돌발성 난청을 겪고 이명을 달고 산다.
엄마가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난치병에 굴하지 않고 강한 정신력과 멘탈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은 안다. 나의 아이들은 아나톨에게 붙어있는, 나를 귀찮게 하는 작은 냄비가 아니라는 것을..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가지고 어둠 속에 갇혀 살아가던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게 하는 존재, 나의 어린 시절을 새롭게 경험하며 나를 치유시키는 존재, 그림책이라는 보물을 발견하게 해 준 존재, 글쓰기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해 준 존재,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이라도 겁 없이 도전할 수 있게 해 준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