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첫째 원진이다. 어쩜 그렇게도 엄마 말이라면 잘 들어주는지 아들이 늘 고맙다. 그렇지만 최종 선택은 늘 본인이 한다.
그런 아이가 어젯밤 꿈에 나타났다.
어떤 물건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조금만 건드려도 그 안에 있는 바늘 같은 부속품 같은 것이 흩어지는 상황이었다. 꿈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느낌만 남아 있을 뿐 물건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아이들이 곁에 있었고, 만지지 말라고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평소 같으면 "알았어, 엄마"하며 동생을 데리고 멀리 갔을 아이였다.
하지만 꿈에서는 180도 다른 아이였다. 만지지 말라는 그 물건을 만져 그 정체불명 물건 속에 있던 수천 개의 바늘이 흩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그 바늘들을 만지기 까지... 꿈속에서 그 바늘이 아이에게 찔릴까 봐 다급했던 내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위험하니깐 얼른 내려놓아, 만지지 마!!!"라고 소리쳤다. 11년째 육아를 하며 첫째에게 하지 말라고 소리쳐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첫째 원진이는 늘 바른생활 젠틀맨이다. 그랬던 아들이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계속해서 반대로 행동했다.
가슴이 달걀노른자가 막힌 듯 답답했다.
아무리 말려도 오히려 더 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소리쳐도 애원해도 아이는 못 들었다.
그렇게 꿈이 끝났다.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내 가슴은 먹먹했다.
옆에 천사처럼 눈 감고 뽀얀 백설기 피부를 자랑하는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얄밉도록 이쁘다.
내가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째 원진이는 11살이다. 초등학교 4학년 초4병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빠르면 사춘기가 슬슬 발동이 걸리는 시기다. 늘 엄마 말이라면 "오케이"를 외치는 아이를 생각하며, 엄마가 옳아도 "싫어 싫어"를 외치는 날이 오기도 하겠지 하며 상상하곤 했었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어떨까? 내 마음은 어떨까 상상해 보곤 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부당한 마음. 자기 생각은 존중해 주지 않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하려 늘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좋아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를 사랑해서... 다소,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들어주려 노력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꿈속 처럼 엄마가 보기엔 위험하고, 엉뚱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아이는 도전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지 모르는 아이의 모습에 어젯밤 꿈 처럼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식을 키우라는 예고일지도 모른다.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며,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임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그리고 11살 첫째, 8살 둘째를 위해 이 글을 마음에 새겨본다.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이 5년은 네가 네 방식대로
생을 펼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쓰마.
내 잣대로 너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너를 속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잘하는 아이라면
그 또한 내게는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못하는 아이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그 누구보다 너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생을 일구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있으니, 유사 이래 내내 그래 왔으니,
시절의 겁박에 새삼스레 오그라들어
너를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의 내 진정한 숙제는
이전에 겹쳐 있던 너와 나의 생을 따로 떼어놓고
나란히 세우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의 세계를 가꿀 것이다.
네가 너의 생을 펼칠 때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가끔 나의 세계를 노크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 엄마의 20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