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2. 15소년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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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15소년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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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건만 기온은 영하 8도까지 떨어지며 여전히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길었던 겨울을 청산하고 새롭게 봄의 시작을 열려는 어느 꿈틀거림이 얼음장벽에 부딪혀 맥도 못 추리고 사그라들며, 올겨울 마지막일 추위가 세상을 매섭게 얼리고 있었다. 밤에 있었던 눈 예보가 앞당겨지며, 금세 먹구름이 하늘을 드리우더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거리를 나선 곳곳의 여행자들에게 멈춰야 할 때임을 경고하며, 하늘은 소리 없이 하지만 강렬하게 눈 결정을 쏟아냈다.

북적북적했던 구정연휴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통인시장 골목도 한결 여유를 찾았다. 월요일 아침 10시의 통인시장은, 또 새롭게 한 주를 준비해보는 움직임들과 그 속을 누비는 방학의 끝자락에 선 아이들이 조화를 이뤘다. 시장 입구 쪽에 준원과 정범, 범석, 승혁, 그리고 어제 급히 합류된 하빈까지 일명 ‘무인도 탐험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우선은, 우리가 서울역으로 가야 해.”


범석이 동그란 안경을 만지작대며 사회지리부도책을 펼쳤다. 한반도가 그려진 페이지를 펼쳐 손가락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면서 설명해나가는 범석이었다.


“서울역에서 부산역으로 간 다음, 부산역에서 부산항으로 가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면 돼.”

“우리 제주도 가는 거야? 무인도 가는 거 아니었어?”

“제주도 주변에 무인도가 있대.”

“아, 거기가 그, 나비모양 그 섬이야?”


고개를 갸웃하며 지도를 잠시 훑어보던 승혁은 곧 뭐든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뗐다.


“현주 누나는 왜 이렇게 안 와. 같이 오는 거 아니었어?”

“현주 누나는 안 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승혁은 준원을 보았다. 사회지리부도책에 집중해있던 범석도 고개를 들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대답이 없는 준원 너머로, 정범이 대답했다.


“누나 아프대.”

“어디가? 많이 아프대?”

“이거 거의 현주 누나랑 너랑 가자고 주도한 거잖아. 그런데 갑자기 그 누나 빠져버리면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 우리 가도 괜찮은 거야?”


사회지리부도책을 탁하고 덮는 범석의 눈빛에서 불안이 감돌았다. 승혁도 시무룩해진 얼굴로 범석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냥 오늘 말고 다음에 갈까? 누나 다 나으면 다 같이 가자. 좀 김새긴 한데 꼭 오늘일 필요는 없잖아.”

“아냐. 누나는 아예 안 갈 거야. 원래대로 오늘 가자!”

“뭐야? 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건데?”

“둘이 싸웠어?”


의아한 표정의 승혁과 점점 낯빛에 불안이 짙어져가는 범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준원은 으쓱했다.


그날 아침, 준원은 현주의 집에서 군복 차림의 퉁퉁한 아저씨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현주와 얼굴이 무척 닮았기에 단번에 현주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봇대 뒤로 얼른 몸을 숨기고는 아저씨가 걸어가는 묵직한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아저씨를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그동안 현주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했던 인물이기에 걸어가는 뒷모습마저도 낯설지 않았다. 현주가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미묘한 반감을 느끼다가, 아저씨가 골목길 저멀리 사라지자마자 대문 앞에 선 준원이었다. 준원은 워키토키를 들고 숨죽여 신호를 보냈다.


“누나, 나 왔어. 아저씨는 갔어. 이제 나와.”


한참을 기다려도 응답은 오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싶어 다시 무전을 해보려는 찰나, 지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아직 있어? 미안해, 나 못 갈 것 같아.

“왜? 무슨 일이야?”

- ...미안해. 내가 좀 다쳤어.

“또 맞은 거야? 많이 심해?”

- 심한 건 아닌데, 아빠가 다시는 나가지 말래. 나 무서워.

“일단 나와봐. 무인도만 가면 아빠 다시는 안 봐도 돼.”

- .......

“괜찮아, 어차피 안 돌아올 거잖아. 이제 누나 아빠한테 맞을 일도 없다. 끝이야, 끝.”

- .......

“누나, 지금 아저씨는 없어. 지금이 아저씨 없는 세상에 갈 절호의 기회야. 좀 아프더라도 나와봐. 내가 도와줄게.”

- ....... 나 진짜 무서워서 그래.

“용기를 내 봐. 지금 나오기만 하면 되잖아.”

- .......

.......

- .......미안해. 너는 몰라.

“...비겁해.”


그 한 마디를 끼얹고 준원은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매서운 강추위에도 준원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로 추운 줄도 모르고 씩씩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준원은 망치를 찾아 돼지저금통을 열심히 내리쳤다. 으깨진 돼지에게서 동전들이 쏟아져나왔고, 정범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충분히 저금통이 부서졌음에도 준원의 망치질은 계속되었고 덕분에 돼지의 형체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분이 풀릴 때까지 망치를 내리치던 준원은, 바닥에 쏟아진 동전들을 쓸어담아 정범과 그대로 집을 나왔다.






그렇게 돈을 챙겨나왔건만, 다섯 명이 -정확히 말하면 네 명. 하빈은 신디인형 말고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긁어모은 돈은 고작 8천원이었다. 8천원은 제주도는커녕 부산역 기차표값도 살 수 없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꿈에 잔뜩 부풀어 도착한 서울역에서, 다섯 아이들은 벌써 난관에 봉착했다. 설마 돈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도 않았는지 순진한 아이들은 급작스러운 이 상황에 당황했고, 특히 플랜맨 범석이 무척 힘들어했다. 긴급 구수회의를 연 아이들은 고심 끝에 제주도를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가까운 인천 바다로 가서 인천 근처에 있는 무인도를 찾기로 하고 인천행 전철을 탔다. 오후 12시 반, 하인천역에 도착한 아이들은 끼니를 해결할 곳을 먼저 찾았고, 근처 국수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들 기나긴 여정으로 몹시 배가 고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돈을 아껴야 한다는 범석의 강력한 주장에 결국 다섯 명이서 가락국수 3그릇을 나눠먹었다.


“어? 쟤 규식이 동생 아니니?”

“맞네. 너, 서범석이지? 여기까진 어쩐 일이니?”


1시 반경, 인천연안부두에서 배회하는 다섯 아이들에게 때마침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인천 바다까지 오긴 왔는데, 그 이후에 무인도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서 가야 할지 난감해하던 참이었다. 교복입은 중학생 두 명이 다섯 아이들 중 범석을 툭툭 쳤고, 두 형들을 본 범석은 구세주를 만난 듯이 기뻐했다.


“형! 형 어디 가?”

“나 집에 가지. 덕적도.”

“덕적도! 그 주변에 무인도 있어?”

“무인도 엄청 많지.”


중학생 형의 대답에 아이들은 다들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범이 와 무인도가 있대! 우리 이제 드디어 살았어! 하며 방방 뛰고 하빈도 그런 정범과 꺄르르거리며 설쳐대자, 준원이 급하게 정범의 입을 틀어막고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너희는 어디 가는데 무인도를 찾니?”

“아, 우리도 덕적도 가.”

“우리랑 똑같네. 같이 가면 되겠다. 배표는 끊었니?”


고개를 젓는 범석을 바라보다, 다섯 아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보는 중학생이었다. 이 서울 어린이들이 무슨 일로 어른도 없이 자기들끼리 저 먼 덕적도까지 가는 건지 무척 수상했다. 그러나,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범석이 큰일을 저지를 만한 대범한 성격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는 뭐 사정이 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규식이나 다른 어른들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도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이 중학생들은 남에게 관심이 많거나 한가하거나 부지런하거나 친절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섯 아이들의 배표를 전부 끊어줄 만큼의 인정은 있었고, 아이들이 배에 오르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흐뭇해하며 그들의 친절은 그것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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