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3. 연의 세계지도

01 연

by HANA


연의 세계지도










준원 오빠는 바보다. 살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처음 봤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줘야 한다. 바보들에게는 친절해야 한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어쩔때는 정말 같이 다니기에 창피하다. 어떻게 열한 살을 먹도록 이런 걸 모를 수가 있지. 오빠는 분명 학교에서 공부도 안 하고 맨날 꼴찌만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에 잘 안 나간 것이다. 이제야 모든 퍼즐 조각들이 맞춰졌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오빠는 사실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간 적도 없으면서 그동안 사기를 친 것이다. 엄마는 진짜 아프리카에 갔다 왔는데, 오빠는 그냥 서울 종로구인가 거기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럼 왜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람인 척했던 거지.

좀 억울하다. 매번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마치 외계인 나라에 온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고 감탄하고 신기해했던 게 누구였는데. 오빠에겐 눈 뜨고 잠들 때까지의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한 것들 투성인 것처럼 보였고,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이란 사실은 솔직히 말이 안 된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거실에선 할아버지가 개미핥기들이 개미를 잡아먹는 그런 재미없는 방송을 틀어놓고 잠들어있었다. 아마 할아버지도 다른 걸 보는 중에 잠들었고 그사이 방송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으리라. 할아버지도 개미핥기가 개미를 먹는 것 따위를 재밌어하진 않았을 것이므로. 그런데 좀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준원 오빠가 넋이 나간 상태로 티비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옆에 온 줄도 모르고 완전히 그 장면에 빠져있었다. 저런 걸 좋아하다니 취향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오빠를 툭 치니까 얼음에서 깨어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나를 봤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테레비에 색깔이 있어!”


우리는 잠시 서로를 보고 놀란 상태로 있었다.


“티비에는 원래 색깔이 있어.”

“우리 집 테레비에는 검은색이랑 하얀색밖에 없었어.”

“말도 안 돼. 이 세상에 색깔이 얼마나 많은데. 오빠네 집 티비 고장났던 거 아니야?”

“그걸로 만화영화도 보고 뉴스도 보고 잘만 봤는걸.”

“색깔이 없는 티비라니. 어떻게 그래?”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말이 맞다. 지금 버젓이 색깔이 알록달록하게 아주 잘 나오는 티비 앞에 서 있지 않은가. 오빠도 그걸 깨달았는지 무척 충격받은 얼굴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오빠는 냉장고 문을 양손에 쥐고 수없이 열고 닫으며 신기해하다가 엄마에게 혼나기도 했고, 곰돌이 스피커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말해서 노래가 나오니까 또 눈이 휘둥그레져서 스피커를 요리조리 만지다가 부서뜨리기도 했다. 로봇청소기가 바닥을 돌아다닐 때는 바퀴벌레라도 본 듯이 어디든 위로 올라가 두 다리를 감싸안았고, 그릇을 세탁해주기도 하냐며 오랜 시간 식기세척기 앞에 앉아 구경했으며, 컴퓨터가 뭐냐며 홀린 듯 노트북 화면을 이것저것 터치하다가 인터넷을 열고는 나자빠지기도 했다. 오빠가 제일 신기해했던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전화기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던 오빠는 내가 할머니랑 영상통화를 하자 당황했다. 스마트폰으로 만화도 보여주고 노래도 들려주고 게임도 가르쳐주자 이 조그만 것이 못 하는 것이 없네 아주 똑똑이상자야, 라며 할아버지도 안 하는 옛날사람 같은 말을 했다.

오빠랑은 맨날 놀이터에 가서 놀았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어야 했다. 같이 밖에 나가면 어쩔 땐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오빠를 구경하는 맛에 재밌기도 했다. 오빠는 늘 목이 부러질 것처럼 고개를 위로 들고 아파트며 상가며 빌딩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두리번거리렸다. 자동차들을 보며 외계인 같다고도 했고, 산책하는 푸들을 보며 외국 강아지가 왜 여기에 있냐며 신기해하던 오빠는 놀이터에 도착해서는 자연농원에 온 것 같다고 무척 좋아했다. 꼬불미끄럼틀이랑 흔들말이랑 짚라인밖에 없는 놀이터인데도 이리 좋아하니 데리고 다닐 맛이 난다.

이런 재미난 모습들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이참에 내 방을 오빠에게 소개해주기로 했다. 오빠는 할아버지 침실 옆의 서재에다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잤다. 주로 거실이나 아예 밖에 나가서 놀았어서 생각해보니 오빠가 내 방에 들어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내 방에 오빠를 초대해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고 놀까 한다.





공주님 방같아 너희 집 부자야? 피아노, 스탠드, 말하는 인형, 홈캠 등 이것저것 만져보던 오빠가 내 방을 본 첫 소감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공주님 방 같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그 말은 공주님 방에 있는 나는 공주님이라는 말이니까. 기분이 좋아서 오빠에게 나의 소중한 보물인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이건 세계지도 그림책이야. 엄마는 맨날 비행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떠나. 지금은 엄마가 너무 바쁘고 내가 어려서 같이 갈 수 없지만, 어른이 되면 꼭 엄마랑 세계여행을 다닐 거야.”


스케치북을 받아든 준원오빠는 한 장씩 한 장씩 넘기며 눈을 반짝였다. 그림들을 한 개도 허투루 보지 않고 살펴보는 모습을 보면서 오빠가 꽤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외계행성에서 떨어진 듯한 모자라고 이상한 이 오빠가 말이다. 사실 이렇게 내 그림을 관심있게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는 더 그랬다. 엄마는 항상 바빴고, 엄마한테는 할머니밖에 없었다. 엄마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림들을 준원오빠는 너무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 잘 그린다. 소질 있네.”


이 한 마디에 반해버렸다. 오빠가 아무리 멍청하고 이상한 사람이라도 내가 다 ‘책임’져줄 것이다.


“저것들도 다 네가 그린 거야?”


스케치북을 끝까지 본 준원 오빠는 벽에 붙어있는 그림들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엔 내가 옛날부터 그린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피라미드, 타지마할, 가장 최근에 그린 아프리카 파란 돌멩이 같은 것들이 붙어있었다. 엄마가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림들이 할머니 손에 모아져 벽면을 장식했다. 그나마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다. 할머니는 고마운 분이다. 엄마가 왜 할머니만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가끔 무서운 표정으로 할머니를 쩔쩔매게 하고는 하지만. 그럴 때면 할머니를 마음 아프게 하는 엄마한테 화가 난다. 엄마는 여기저기 ‘트러블’만 일으키고 다니고 문제가 많다.


“나중에 진짜 세계일주 꼭 가야겠네. 이건, 세계지도?”

“응! 지구본 보고 그렸어. 잘 그렸지?”

“오오! 일곱 살이 세계지도까지. 제법이네. 그런데......”


벽 아래쪽으로 한동안 많이 그렸던 세계지도들이 몰아서 붙여져 있었다. 오빠는 그림들을 한참을 유심히 보더니 뭔가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게 뭐야?”


오빠가 가리킨 것은 지도 한가운데 바다에 그려진 나비섬이었다. 할머니는 그 바다를 ‘태풍만’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이건 태풍만에 있는 나비섬이야.”

“나비섬이라고?”

“응. 여기는 행복한 것들만 가득한 예쁜 섬이래. 별사탕 풀도 있고, 무지개 방귀 유니콘도 있고, 노래하는 꽃도 있고, 별들이 살고 있는 소원나무도 있고, 음, 또 뭐가 있더라.......”

“신기한 샘물.”

“아, 맞아! 신기한 샘물! 오빠도 아네!”

“넌 이걸 어떻게 알아?”

“이거? 우리 할머니가 가르쳐줬어.”

“할머니?”

“응. 지구본에는 없는데 원래 이런 섬이 있다고 할머니가 그려줬어. 원래 보이는 게 다가 아니거든. 할머니는 나중에 세계여행할 때 여기를 꼭 가고 싶대.”


할머니가 그려준 나비섬이 꽤 유명한 섬이긴 한가보다. 모르는 것들 투성이인 오빠가 알 정도면 말이다. 오빠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비섬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오빠도 할머니만큼이나 그곳을 가고 싶은 걸까. 도대체 거기가 어떤 곳이길래 그러는 거지. 괜히 나도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말 나온 김에 이 나비섬을 그려보기로 했다.

좀 놀랐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오빠는 생각보다 섬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는 그림 실력까지도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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