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멸치 배를 가르고, 똥을 발랐다. 다시물을 우려내는 멸치들은 가끔 우리 집 밥상에 멸치고추장무침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남편이 아침 먹을 때 밥은 먹기 싫고, 혼자 먹도록 놔두긴 그래서 맞은편에 앉아서 멸치 똥을 발랐다.
“멸치는 사랑을 참 많이 받는 생선인 것 같아. 잔멸치는 잔멸치대로, 중멸치는 중멸치대로, 큰 멸치는 국물 우려내는 용으로. 큰 놈, 작은놈 골고루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같은데...” 이렇게 말했더니 남편은 ”그건 당신 생각이지. 멸치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남편 말에 고개 끄덕이며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한 접시 가득 쌓여서 이제 그만해야지 하는 찰나 '아야' 뭔가 까슬까슬한 게 박힌 듯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손으로 쓱 문질러 보면 까쓸한 감촉이 느껴졌다. '멸치도 가시가 있나?' 생각 없이 무심코 나온 말에 남편은 "멸치를 무시하나? "라고 했다.
조금 전까지 내 입으로 멸치는 참 유용한 생선이고 크기와 상관없이 골고루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가리도 갈아서 멸치가루를 만들기도 한다는데, 가시가 없다고 생각하다니. 은연중에 내가 다른 생선보다 작다고 무시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어나, 갈치, 가자미를 먹을 때는 조심조심 살과 가시를 분리해서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얘들은 당연히 가시가 있음을 아는데, 멸치는 언제 한번 가시를 따로 발라먹은 적이 있던가 말이다.
눈에 잘 보이는 것과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아침이다. 사람을 대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말이 되었을 수도 있구나. 내가 이렇게 가볍게 말을 던지는 사람이었나 철렁해진다.
세상사는 이치가 이런 것인가. 아주 작은 것에도 배울 것은 하나쯤 있다고 하는데, 아직도 까슬하게 만져지는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며 멸치에게 배운다. 역시 멸치는 뼈대 있는 가문이었어. 쉽게 보이지 않는다고 내 맘대로 판단하지 말지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이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고 함부로 이것도 없겠구나 단정 짓지 말지어다.
그건 그렇고 남편은 벌써 출근했는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가시를 어떻게 뺀담. 우선 문구점에서 사다 놓은 돋보기부터 찾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