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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게 May 18. 2021

나의 첫 주부 안식년

가족상봉

2017년 3월


지난 주말에서울 올라가서 딸과 애아빠 얼굴을 보고 돌아왔다. 집 나온지 3주만의 서울나들이였다. 오랫만에 만난 남편은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좀 못생겨진 느낌이었는데 아마 전날 과음을 한탓에 그런것 같았다. (남편 체중을 재어보니 살도 2kg쯤 쪄있다.) 대학새내기가 된 딸은 요즘 동아리에 학생회까지 쫓아다니느라 무지 바쁘다고 들었는데 약속 장소까지 뛰어왔는지 상기된 얼굴이 벚꽃처럼 화사하다. 녀석에게 곧 남자친구가 생길테고 그 연애담을 들어주려면 밤마다 귀 좀 아프겠구나 싶다.

오랜만의 가족 상봉을 기념하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다. 평소였다면 어림없었을 비싼 메뉴로 저녁 외식을 하고 딸내미에게 봄옷 몇벌이랑 가방을 사주었다. 그리고 내가 주부안식년 휴가를 얻어 1년간 떠나있기로 했던 우리의 집으 귀가하여 3일이라는 시간을 함께 냈다.

아내가 없는 동안 남편은 요리사가 되어있었다. 김치를 재료로 한 요리는 물론이고 오징어볶음과 고등어조림, 김밥까지 해냈다고 자랑을 늘어 놓는다. 일본에서 큰 맘먹고 사온 고가의 세라믹 칼날의 이가 나가있는 걸 보니 그동안 요리를 많이만 한게 아니라 좀 과격하게 한 것 같다. 서울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손도 까딱 안하고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설거지도 이제는 남편 몫이었다. 주부안식년 선언을 내가 제대로 하긴 했나보다. 아내는 휴가 중이니 자기가 다 하는게 맞다고 남편 머리속에 각인이 된 것 같다. 예상치 못한 관계의 반전이 나로선 즐거웠다.

떨어져 사는 몇주간 카톡과 영상통화를 자주 해서 그런가 사실  난 가족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가 정서적, 심리적 거리로 이어진 느낌이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며 살았던 몇주간 가족들을 일부러 내 마음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애쓴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안하면 내 휴가가 물거품이 될지도 몰라서, 다시 서울에 주저앉아 예전과 똑같이 살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랬을거다. 남편이 전철역에서 날 먼저 보고 반가운 마음에 뒤에서 어깨를 툭 쳤는데 난 무심결에 표정이 일그러졌고 그런 내 반응에 남편은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미안해져서 그런 뜻은 아니라고 애써 말을 돌렸다.

남편은 말이 부쩍 많아졌는데 예전의 그 시큰둥하고 무심한 표정은 어디에 가고 싹싹하고 다정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이 사람 내 남편이 맞나? '권태기 부부에게 별거가 주는 긍정적 영향'을 주제로 연구보고서를 써 볼까 싶다. 우리는 새벽까지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4월에 춘천 마라톤 대회 나갈거라는 얘기, 여름 휴가 때는 템플스테이 해보고 싶다는 얘길했다. 난 무조건 찬성이라했다. 사내 야구 동아리 있다는 게 기억나서 그것도 하라고 권했다. 배우자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도록 배려하는게 우리 나이의 사랑이라고 깨닫게 되었으니까.
'여보, 뭐든 당신 좋은대로 하세요. 이제 내 허락 받지 않아도 돼요. 당신 몸도 맘도 다 당신거예요.'

지난 20년간 우리 부부는 가족 공동체를 위해 개인적인 양보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했다. 그 노력 덕에 우리 가정이 이만큼 왔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가정은 제법 안정을 찾았으니 이젠 부부 각자의 중년을 점검하고 욕망을 들여다보는게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세식구는 지금 각자의 삶을 건강하게 잘 꾸려가는 중이다. 우리는 떨어져 살지만 서로를 지지하며 여전히 걱정한다. 달라진게 있다면 옆에 붙잡아두고 서로에게 관여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 거리를 두고 사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내, 남편과 자식 없이도 잘 지낼 만큼 제각기 바쁘고 내적으로 성숙해졌으니 가능한 일이다. 내가 가족을 기다리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게 갑작스런 결정이 아닌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처럼 느껴진다.


일요일엔 부녀의 겨울 이부자리를 죄다 빨아 널었다. 청소는 절대 해주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왔지만 결국 욕실 바닥 벌건 물때를 닦아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월요일 낮 원주로 돌아가려고 짐을 챙기는데 거실 안으로 익숙한 햇살이 드리워진다. 나른한 봄볕이었다. 마음이 잠깐 흔들린다. 구석구석 내 손때와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집이 눈에 들어온다. 딸내미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이사와서 그 딸이 올해 대학에 들어갔으니12년 넘게 살아온 집이다. 오랜시간 우리 가족을 품어주었던 따뜻한 보금자리, 긴 시간 주부로 살아온 나에겐 쉼터이자 일터가 되어준 곳.

난 시끄럽고 복잡한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정이 들지 않았지만 이 집에는 깊이 정들었던 것 같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강원도행 고속버스에 서둘러 몸을 실었다. 지금은 이 곳 원주의 작은 방으로 돌아왔고 난 다시 휴가 모드다. 앞으로 일년 동안 이 곳이 진짜 내 집이다. 혁신도시 건설로 아침부터 공사장 소음이 귀를 때리는 곳.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냉정한 이방인들의 도시에 내가 있다. 난 이 곳에 서서히 익숙해질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건가?' 가끔 의문이 들때면 여긴 강원도이고 창 밖에는 웅장한 치악산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는 지금 서울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살아보기라는 멋진 과제를 수행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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