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년 4월 29일생
도시에서 자랐지만 촌스러운 남자와
시골에서 자랐지만 촌티 나지 않는 여자가 만나 사랑을 했더랬다.
단 몇 개월의 연애 후, 숫기 없는 남자에게 청혼도 받지 않고 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자는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사는 것이 보통의 행복이었던 그 시절이었고, 두 사람도 그렇다고 믿었다.
부부는 수없이 많은 고생과 슬픔 끝에 드디어 첫 아이를 낳았다.
01년 4월 29일 생,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하늘 민에 슬기 서. 이름에 쓰는 좋은 한자를 일일이 찾아 어머니께서 손수 지으셨단다.
누군가의 첫 아이가 되는 것은, 탄생의 순간 뿐만 아니라 부모 일생의 모든 것에 있어 '처음'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배 아파 낳은 아이이고,
처음으로 '엄마', '아빠'라고 불러준 아이이며,
처음으로 제 손으로 먹이고 키워야 하는 아이이다.
어쩌면 부모의 여정에서 매번 처음을 함께하는 특별한 아이인 셈이다.
그렇게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닌, 그런 첫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운이 좋게도, 사랑을 주고 또 줘도 모자라다고 말하는 부모님의 첫 아이였다.
부모님께서는 걸음마가 아직 서툰 아이가 넘어져 다칠까 안고 다니기 일수였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고 입히셨다고 했으니 말이다.
유치원생이 되었을 무렵, 그러니까 '태몽'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순간부터 곧잘 부모님께 내 태몽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곤 했다.
"민서야, 너는 태몽이 3개나 돼. 얼마나 엄마 아빠가 아이를 바랐으면 태몽을 3개나 꿨겠어. 너는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아이야."
하나는 맑은 물에서 황금 뱀이 나와 엄마의 손가락을 무는 꿈.
하나는 절 앞의 툇마루에 홀로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나오는 꿈.
하나는 옥으로 된 커다란 부처님의 얼굴을 만지는 꿈.
시간이 흘러 잊을만 하면 다시 말해 달라고 쪼르르 달려갔다.
아마 어린 나는 태몽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나를 얼마나 바랐는지,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이다.
돌이켜 보면 노력, 성취, 피, 땀 무엇 하나 들인 것 없이 얻었던 유일한 행복은
첫째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산 것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