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울 수 없단 말로 스스로 가둘 순 없어
이상하게도 그 중독에 매료되어 갈 때쯤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도 커져 갔다. 처음엔 약간의 서운함 내지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순간 이 기분들이 해소되지 않을 때면, 그들의 모든 것이 질릴 정도로 싫증이 나곤 했다.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마음속 깊숙이 던져놓았다.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편을 택했다.
신가울님은 지난 3주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3주가 지날 때마다 매번 듣는 문장이지만, 들을 때마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늘 봐오던 진료실은 여전히 쾌적했으며, 책상이며 책장이며 모든 것들이 각져 있었다. 정신의학과 담당의의 백색 가운에서는 지난 6월의 첫 내원일을 연상케 하는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여전히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고요, 또 주말에는 어디든 나가서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아차차 최근에는 경제 기사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있어요. 마음속에 담아놓은 말은 많았지만, 단 하나의 단어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네.
어떻게라고 물어온 질문에 대한 답은 단답형으로 끝나버렸다. 천장으로 향한 두 눈은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입을 다시 열었다.
전이랑 비슷하게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면서요..
'그런데 선생님, 여전히 불안해요. 복직하게 되면, 직원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볼지 그 시선이 두려워요. 저 잘할 수 있을까요.'
내가 상상한 미래의 모습은 처참했다. 우울증 환자로 각인되어 피해의식 속에 갇혀 사는 삶으로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일순의 진료는 종료되었다. 그다음은 대기실에서 검사 항목에 대한 답을 선택하면 끝이었다. 그 후 진단서는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3개월 더 휴직한 셈이었다. 일을 당장 재개하지 않아도 되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의 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곧이어 공허한 마음이 드는 걸 제재하기엔 난도가 있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지 않는 한 움츠려진 어깨를 필 재량도 없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 바뀔 거라는 기대를 하는 건 오산이었다.
사람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걸 그 당시엔 몰랐다. 나의 이중생활은 탄로 날 게 분명했다. 최대한 나를 꽁꽁 숨기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관계로 전락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드러낼 만큼 배짱이 두둑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일을 잠깐 쉬고 있다고 변명을 둘러댈 뿐이었다. 그 이상의 질문이 오갈 때는, 질병 휴직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관계가 좀 더 진전이 되었을 때에도, 구체적인 병명을 언급하지 못했다. 그냥 몸이 아파서 쉬는 거라고 어설프게 설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의 이미지가 새롭게 각색될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답답했다. 오전에 잘못 먹다 체한 증상이 오후 내내 남아있는 느낌처럼 찝찝했다. 거짓된 이미지로 연기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혼자 방에 갇혀 살 자신은 없었다. 스스로를 돌봐야 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교류도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단순히 외로워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일종의 정서를 교감할 타인과 함께 있을 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문제는 본연의 나라는 정체가 들통날까 봐 걱정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내면적 욕구를 따라야 했다. 누군갈 만날수록 잠시나마 맛볼 수 있는 활력에 중독되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그 중독에 매료되어 갈 때쯤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도 커져 갔다. 처음엔 약간의 서운함 내지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순간 이 기분들이 해소되지 않을 때면, 그들의 모든 것이 질릴 정도로 싫증이 나곤 했다.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마음속 깊숙이 던져놓았다.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편을 택했다. 매번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인간관계에 진전이 없다 보니 자동으로 무력해졌다. 무기력해질 때마다 번아웃 현상은 동반되었다.
어느 정도 쾌유한 줄 알았던 메니에르 의심 증상이 도질 때쯤 의외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이라곤 소설밖에 안 읽던 내게 새로운 기회가 들어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