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내는 과정이 합당하지 않을 리 없잖아
여전히 겨울 외투를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월초였지만, 옷감의 두께는 점점 얇아져 갔다. 카디건 하나 걸칠 정도로 온몸에 온기가 스며들 때쯤, 내게도 늦은 봄이 찾아왔다. 이제 막 질펀해진 땅 위에 씨앗을 뿌린 단계였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기회였다. 먼 미래로만 치부했던 나의 4.5m를 어렴풋이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었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붉은 글씨로 적힌 '열차접근'이라는 단어였다. 열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오롯이 선로만이 그 자리를 지켰다. 정지를 알리는 신호판만 깜박거릴 뿐, 모든 기계들의 작동은 멈춰있었다. 그곳에선 그 흔한 불빛조차 볼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올 3월 초의 한 골목거리였다. 온 신경이 정지되었던 그때, 건널목 사이에서 마음을 빼앗아 간 건 다름 아닌 제한높이 4.5m였다. 달리는 기차도 높이나 속도에 제한선이 있었다. 아무 감정 없는 기계에도 기준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내겐 그 흔한 기준치마저 설정해놓지 않았다. 이를테면 자책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본인에게 집중하는 시기임을 감지할 기력조차 없었다. 대체적으로 나를 위한 기본적인 배려나 적절한 대응 방법을 몰랐었다.
그 순간 잊고 살았던 현실적인 것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연초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단 단상으로 경제 기사를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휴직을 연장하기로 마음만 먹었지, 그다음 순서는 그려지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성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내게도 4.5m와 같은 마지노선을 정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보류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살다 보니 살아졌다는 말로 남은 여생을 발목에 묶인 채로 허송세월하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 한계선에 가까이 도달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었다.
새로이 마주하게 된 한 가지가 있었다면 다른 의미로의 독서였다. 평상시에 읽지 않았던 경제와 자기 계발 분야를 읽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작은 변화였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일깨워준 요인은 그토록 미워했던 인간관계에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생각만 달리 했을 뿐인데, 관계에 대한 관점을 새로 정립할 수 있었다. 특히 생산적인 활동을 매개로 얻어지는 정서적인 교감은 내게 중요했다. 독서 모임에 참여한다한들 갑자기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생각 외로 오래 유지되었다.
여전히 겨울 외투를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월초였지만, 옷감의 두께는 점점 얇아져 갔다. 카디건 하나 걸칠 정도로 온몸에 온기가 스며들 때쯤, 내게도 늦은 봄이 찾아왔다. 이제 막 질펀해진 땅 위에 씨앗을 뿌린 단계였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기회였다. 먼 미래로만 치부했던 나의 4.5m를 어렴풋이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실행력이 남다른 단계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타인과 나를 구분해 낼 순 있었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단 하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게 된 것도 나를 찾아내는 단 한 가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걱정 없이 글 쓰는 일에 전념하기'
그 무렵 나는 하루 네 시간 이상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텃밭에 뿌려놓은 씨앗이 서서히 자라 새싹이 움틀 때쯤, 3월은 뒤로 가고 먼발치에 있던 4월이 성큼 다가왔다. 그만큼 시간은 예상과 다르게 빠르게 흘러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