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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가울 Jun 30. 2023

공무원이기 전, 그저 나일뿐

비로소 완성되어 가는 것들

타인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내면을 채워가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숨통이 트여만 갔다. 숨통이 트인다는 건, 마음속 여백을 점점 넓혀가는 것과 동일했다. 현실과 동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겨도, 불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간극을 즐겼다. 간극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본연의 시각이 남들과 다르다 한들, 거기서 느낀 감정에서 비롯된 격차라는 걸 인정하면 됐었다. 그러한 감정을 기록함으로써 나는 고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소설 작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는 가상과 현실 세계를 드나들곤 했다. 글이라는 재료는 여전히 매력적일 정도로, 끝도 없이 빠져버리는 블랙홀과 같았다. 때론 소설에만 매달리는 것이 맞을지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잠깐 글을 쓰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영역을 한 분야로 한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커질 때쯤,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자연스레 그 범위는 나의 일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일상에서 마주한 나의 글은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고, 편안해졌다. 막연하게 '자유'를 갈망하다 차선책으로 '여유'를 선택한 후, 내게도 심적인 여백이 찾아왔다. 


타인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내면을 채워가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숨통이 트여만 갔다. 숨통이 트인다는 건, 마음속 여백을 점점 넓혀가는 것과 동일했다. 현실과 동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겨도, 불안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간극을 즐겼다. 간극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본연의 시각이 남들과 다르다 한들, 거기서 느낀 감정에서 비롯된 격차라는 걸 인정하면 됐었다. 그러한 감정을 기록함으로써 나는 고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지난달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5월은 좀 더 진취적이고 주도적인 날들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성숙해져 갔다. 평일 어느 오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서 담소를 나눴을 때였다. 공직 생활을 하다 육아휴직 중인 친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복직하면, 내가 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항상 밝게 웃는 친구라 걱정이 크게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그 친구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추후 복직을 할지 명확하게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친구의 말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일을 다시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였다. 한참을 생각하다 앞에 놓인 종이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음료를 주문하기 전, 종업원이 가져가라던 책갈피였다.


'좌절하고 있는 인간이 네가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구나.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히 몇몇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야.'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두려운 마음은 뒤로 하라는 무언의 계시였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취하라는 비교적 친절한 답안지였다. 머리가 띵해졌다. 사실 이 정도의 해결책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용기는 없었다. 말하는 순간, 이런저런 연유로 핑곗거리를 만들어 합리화할 거라는 걸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친구와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제과점 앞에서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망설임은 단 1초도 없었다. 곧장 입구로 들어가 신중하게 조각 케이크 하나를 구매했다. 서둘러 집에 가자마자 한 건, 포장 박스에서 케이크를 꺼내는 일이었다. 그다음엔 어렸을 적 나를 소환했다. 케이크만 보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광적으로 좋아했던 꼬마였다. 그 소중한 케이크 가운데에 초를 꽂고, 두 눈을 감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눈을 살며시 뜰 때쯤, 마음속 메아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넌 누가 뭐라 해도 소중한 존재야. 무슨 근거라도 너를 미워할 자격은 없어.
결국엔 너만의 길을 갈 거라 믿어.


연신 외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스스로를 향한 위로의 문장들이었다. 


마음속 간직했던 여백 한 구석에서 이와 같이 응원해 주는 내편이 있었다.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형체가 완성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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