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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가울 Jul 05. 2023

면직과 복직의 경계선에서 마주한 현실

그런데도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공무원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면 속 시원할 줄 알았다. 정작 마음은 되레 뱃속에 돌덩이로 가득한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지난날과 똑같이 일어나서 그날의 일을 완수하는 데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턱 하니 막힐 것만 같았다. 내 시간을 온전히 하고 싶은 일로 채워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었다. 공직에서 벗어나는 길이야말로 홀로 설 수 있는 길이라 자신했다. 단순히 동료들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저 견고하게 짜인 그 틀 안에 갇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돌아갈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다.




자꾸만 앞으로 내디뎠다. 한 발짝씩 조심스레 발을 올렸다. 눈앞에는 수많은 계단이 연달아 있었다. 적잖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의 면적이 넓어지려고 하던 참이었다. 산 정상으로 따라 걷던 언니의 잠깐 쉬고 가자는 말에 연신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가 범바위인가 봐. 이게 호랑이 모양이라고? 의미를 최대한 부여하지 않는 말들이 오가는 동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져가는 모양새였다. 불그스름한 빛의 세기가 작아지기 전, 우리는 산 정상에 올라가야 했다. 단숨에 올라간 꼭대기에는 불타는 저녁놀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의 전경이 전부 보이는 바위 위에 서서 도시의 공기를 온 힘을 다해 들이마셨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자 비로소 이곳에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 결단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저번에 같이 못 놀아서 아쉽다.


어둑해지기 전에 서둘러 하산하는 길이었다. 언니의 목소리는 사방에 둘러싸인 나무와 돌계단에 부딪힌 채로 반향이 되어 울렸다. 작년 11월,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얄쌍해진 언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니테일의 좌우로 흔들거리던 속도는 대번 빨라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언니의 움직이는 입모양이 보였다.


그날 강의 듣는다면서? 복직하기 전 봐야 하는 시험이 있는 거야?


아니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끝내 마음속 얘기를 꺼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언니 나 사실 면직하려고. 이 한 문장을 망설임 없이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할 때마다 입안의 침이 자꾸만 말라갔다. 갈증이 났다. 꾹 다문 입술 사이로 알 수 없는 희미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처음으로 면직을 하겠다고 말한 상대는 다름 아닌 의사 선생님이었다. 휴직종료일로부터 자그마치 한 달 전이었다. 나는 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나열했다. 지금이 면직을 할 수 있는 기회며,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일로 돈 벌 준비가 되어 있다고 신신당부하였다. 마땅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면, 면직해야 할 명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 한 명은 내 편이 되어줘야 했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공기로 가득 찬 주방에서의 저녁 식사자리였다. 아빠 저 공무원 그만두고 싶어요. 마음속 울림이 육성으로 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침묵의 순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반 박자의 호흡을 간신히 할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아빠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럴 것 같았다.


얼마 전 꿨던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했다. 느낌이 이상하더니만, 그런 얘기를 들으려고 그랬었구나. 생각지 못한 덤덤한 반응이었다. 아빠는 어쩔 수 없다는 고갯짓만 했다. 그 고갯짓은 기어코 내 머릿속을 헤처 가며 어지럽혔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렴.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잖니. 묵직한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공무원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면 속 시원할 줄 알았다. 정작 마음은 되레 뱃속에 돌덩이로 가득한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지난날과 똑같이 일어나서 그날의 일을 완수하는 데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턱 하니 막힐 것만 같았다. 내 시간을 온전히 하고 싶은 일로 채워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었다. 공직에서 벗어나는 길이야말로 홀로 설 수 있는 길이라 자신했다. 단순히 동료들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저 견고하게 짜인 그 틀 안에 갇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돌아갈 마음이 사라진 줄 알았다. 자꾸만 꿈속을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남아있던 힘마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몸속에 흐르던 온갖 액체들이 배출되어 질긴 가죽만 남은 상태와도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다가 돌멩이를 씹은 것처럼 불길한 기운이 맴돌았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때론 간접적인 방법으로 각인되곤 했다. 대개는 고정 소득이 주는 안정감과 분리될 때 오는 불안 장애로부터 기인됐다. 대출을 받기 위해 필요한 직장명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윳돈이 필요했고, 당분간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재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내겐 그럴싸한 변명 뒤에 감춰왔던 현실적인 구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을 뒤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이틀이었다. 면직에서 복직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이틀이면 충분했다. 일단 살아가려면 현실과 타협을 했어야 했다. 애초부터 면직의 길은 정해졌지만, 나는 그 시기를 몇 년 뒤로 미루기로 합의했다. 혼란스러운 감정 틈새로 이성이 혼신을 다해 제 역할을 다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6월도 반이 지나가버렸다. 한 달의 반 이상이 순식간에 흘렀다는 건, 그만큼의 미래 시간을 앞당겨서 썼다는 걸 의미했다. 앞당긴 만큼 시간을 아껴 써야만 했다. 그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준비해갈 정비의 시간 또한 필요했다.


그 무렵 나는 제한높이 4.5m 표지판이 달려있는 선로 근처를 다시 지나가게 되었다. 한번 더 마주한 그 골목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글은 계속 써야겠다는 말만 계속 반복한 채, 그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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