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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Feb 14. 2024

쌩쌩 달리기 딱 좋은 날씨야

출근을 앞두고

오늘 아침 오랜만에 걸어서 유치원 등원을 했다.

나는 원래 유치원까지 걸어가는 걸 좋아하지만

겨울에는 날이 춥기도 하고, 요즘은 아이를 바래다주고

바로 요가원에 가야 하다 보니 부쩍 차로 움직이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문득 달력을 보다 아이를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주면 유치원은 봄방학을 하고, 나는 출근을 하게 되니.. 이제 아이 손을 잡고 이 시간에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오늘은 아이와 왠지 걷고 싶어 운동 가는 걸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걷기로 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오늘은 킥보드를 타고 가자 하니 아이는 팔짝 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S: 엄마, 내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뭔 줄 알아?

M: 글쎄~? 뭔데?

S: 바로 킥보드야!


신이 난 아이를 보자, 더 미안해지는 엄마 마음. 좀 더 많은 시간을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등원했다면 좋았을 텐데.


S: 엄마, 오늘은 왜 킥보드 타고 가는 거야?

M: 날씨가 따뜻한 것 같아서~

S: 그래? 난 시원한데~  쌩쌩 달리기 딱 좋은 날씨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를 뒤로하고 쌩쌩 달려 나가는 아이.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은이의 말처럼 어느새 쌩쌩 달리기 좋은 날씨가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섭게 불던 찬 바람이 어느새 따뜻하게 느껴지고, 패딩의 단추를 여미지 않아도 될 만큼 날씨가 포근해져 있었다.


벌써 봄이 왔구나.


아이를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림처럼 예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바쁘게 산다고 또 이 느낌을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놓치게 되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섭리. 걸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들.


자꾸만 잊는다. 다시 태어난 삶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지.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딸아이와 자연을 거닐며

아이의 재잘거림을 듣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인데.


그동안 뭘 한다고, 그렇게도 바쁘게 살았던 건지.

집에 와서 괜스레 눈물이 난다.


코앞으로 다가온 출근이, 갑자기 실감이 난 걸까.

아이 곁에 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걸,

아이에게 더 잘해줄걸, 더 자주 놀러 가고, 여행 가고,

더 많은 걸 경험하게 해 줄걸.


아쉬운 마음에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 와중에 오늘 아침 소은이가 신발을 신으며 했던 말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S: 엄마, 나는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어.

M: 왜? 아기 되면 유치원에도 못 가는데?

S: 아기 되면 엄마랑 하루종일 있을 수 있잖아.


어쩌면 아이도 눈치채고 있는 걸까. 이제 엄마가 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줄어든다는 것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은 시간 동안 소은이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다시 워킹맘이 되어도 아이와 나의 소중한 삶을 지키는 것이다. 일단 오늘 하원할 때 킥보드를 가져가겠다고 한 약속부터 꼭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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