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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Dec 17. 2023

난 눈이 오는 게 좋아

눈 오는 날의 소회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린 함박눈.

며칠 전 소은이가 말했다.


"엄마, 난 나뭇가지에 잎이 다 떨어진 게 너무 좋아."

"왜? 나뭇잎이 있어야 더 예쁜 거 아니야?"

"아니야. 나뭇잎이 없으면 겨울이 되었단 뜻이잖아. 겨울이 되어야 눈이 오지. 난 눈이 오는 게 좋아. 눈이 오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탈 거야."


그리고 소은이의 바람대로 오늘 드디어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 밖으로 눈이 펑펑 오고 있는 걸 보고

"소은아, 눈 와."라고 소리를 쳤더니 자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왔다.


평소에는 그렇게 안 일어나던 애가 이렇게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는 거였나. 아이는 창 밖을 바라보며 기뻐했고, 아이가 눈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산 위로 커다란 눈송이가 펑펑 내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그 예쁜 순간이 카메라에는 다 담기지 않아 아쉬웠다.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

그런데 엄마가 서울에 간 사이, 부녀는 눈이 내리는 순간을 차곡차곡 담아 예쁜 모양을 빚어냈다.

눈으로 곰돌이도 만들고, 오리도 만들고, 하트도 만들고. 남편이 보내온 사진 속에 행복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밖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제는 각자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사실에 새삼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만난 날 낯설어하던 어린 시절의 소은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동안 시간이 이렇게 흘렀음을, 세월이 이렇게 지났음에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아이 곁에 무사히 있으니까.


언젠가 눈이 오는 게 기쁘지 않을 만큼, 소은이가 커버릴 날도 올 것이다. 어른이 되어 운전을 시작하면 눈 오는 걸 싫어하는 어른이 될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소은이에게 이 글을 보여줘야지.


네가 얼마나 눈 오는 걸 좋아했는지.

눈이 널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그리고 그런 너를 보며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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