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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Mar 30. 2023

이렇게 좋은 밤이 어디서 올까

꼬마 시인의 밤산책

아 좋다

이렇게 좋은 밤이 어디서 올까


하늘 봐

별들이 두 개 밖에 없어


리 그네가 움직여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별이 움직이는 건가 헷갈려


지금 자는 밤인데

밤에 불이 엄청 많이 켜져 있네


전등 좀 봐

저 아파트 좀 봐


엄청 크고 그네는 엄청

하은별유치원은 그대로 있고


우리 집은 향긋하고

나무는 너무 귀엽고

바닥은 울퉁불퉁해


그리고 제일 좋은 건 할머니야

할머니집에 계속 오고 싶어.


옛날에 친구들과 놀던 거 진짜 재밌었어.

미끄럼틀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고

재미난 게 진짜 많아.


오늘은 구이 있어서 별이 잘 안 보여

어 저기 하나 보인다

하나밖에 없지만 그 별은 귀엽고 탐스러워


그리고 말이야

요즘에 날씨가 시원하고 좋더라.


엄마 그네 한 번만 더 밀어줘

한 번만


내일부터는 이렇게 안 할게


저기 나무들 유령 같기도 하고

어, 불이 꺼졌어

우리 친구들 벌써 자고 있나 보다

하나 둘 셋  다섯 여섯





소은이와 밤 산책을 했다. 할머니집에 들렀다가 집으로 걸어가는 길, 잠깐만 놀이터에서 놀자며 내 손을 잡아끄는 아이.


아이는 놀이터 그네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치 노래를 부르듯 보석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아이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1초 만에 언어가 되어 입에서 흘러나왔다.


쉴 틈도 주지 않고, 32개의 문장을 혼자 발화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다듬지 않고  내뱉은 말들이 마치 시처럼 운율이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다.


별이 귀엽고 탐스럽다니. 아이는 어떻게 이런 표현들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일까.


예민한 아이들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여섯 살이 되면서 힘들었던 육아는 점차 끝이 보이고, 예민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이 빛나는 순간이 오기 시작한다.


오늘 드디어 예민한 아이 육아법의 고가 완성되었다. 이 시는 초고를 탈고한 나에게 딸아이가 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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