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한테 응원받고 싶었단 말이야.

잊지 못할 태권도 공개수업

by 강진경


4월 초 주말, 태권도 공개수업의 날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서 시립청소년문화센터를 대관해 공개수업을 열었다. 소은이가 태권도를 시작한 건 여덟 살 봄. 운동을 통해 몸도 마음도 조금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내기 시작한 태권도였다. 꾸준히 다니다 보니 어느새 1년이 지났고, 소은이는 곧 빨간 띠 승급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 줄넘기나 피아노, 그림 그리기 같은 활동은 집에서도 아이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지만, 태권도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공개수업 소식이 더 반갑고 기대됐다.


하얀 도복이 제법 잘 어울리던 소은이. 노래에 맞춰 품새를 선보이고, 발차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까지. 공개수업은 알차고 풍성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은이의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삐죽 튀어나오는 입술,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내 마음도 덩달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잠시 부모 곁으로 온 소은이를 안아 주며 물었다.


“소은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소은이는 도리질을 하며 괜찮다고만 했고,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공개수업이 끝나기 직전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이 각자 고치고 싶은 나쁜 습관을 송판에 적고, 발차기로 격파한 뒤 부모가 메달을 걸어 주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송판을 들고 있었는데, 소은이가 발차기를 하기 전 송판 방향을 바꾸었다.


“소은아, 송판은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비스듬히 드는 거야. 아까 관장님이 이렇게 들라고 하셨어.”


내가 남편이 든 송판을 바로 잡는 순간,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동안 꾹 참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열하는 소은이를 보며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아이의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영문도 모른 채 터진 눈물 앞에서 나 역시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사실 소은이가 공개수업에서 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학년 때 학교 공개수업에서도 크게 울어 모든 학부모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이날도 소은이는 울면서 단체사진을 찍어야 했다. 모두가 웃으며 체육관을 나설 때 우리 가족만 침울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소은이가 왜 갑자기 우는 걸까요?” 하고 걱정하는 선생님들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오자, 이번엔 내 눈물이 터졌다. 대체 왜 우는 건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나야말로 알고 싶었다.


한참 후에 사태를 파악한 결과, 소은이가 운 이유는 이렇다. 프로그램 중간에 관장님께서 학부모님들께 응원의 한 말씀을 부탁하셨는데 선뜻 바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손을 들까 말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사범님이 재빨리 "그럼 제가 대신하겠습니다!"하고 나섰다. 그런데 아이는 그게 섭섭했던 모양이다. 어린 마음에 엄마, 아빠가 번쩍 손을 들고 큰 목소리로 응원을 해 주길 바랐던 것. 그때부터 참았던 울음이 마지막 엄마의 핀잔 아닌 핀잔에 터지고 만 것이리라.


"난 엄마한테 응원받고 싶었단 말이야."


울먹이는 소은이를 보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그런 이유로 속상해하는 아이는 소은이 빼고는 없어 보였다. 다른 부모가 응원을 했다면 우리 엄마, 아빠가 응원을 안 한 게 속상할 법도 하지만 모두가 응원을 안 했는데 왜 유독 소은이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처음에는 아이의 이런 모습이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날 밤, 소은이가 걱정된다며 관장님께 연락이 왔고, 관장님께 오늘 운 이유와 상황을 답장으로 쓰다 보니 저절로 내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소은이가 오늘 운 이유를 보면 어른들 눈에는 황당하고 사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만큼 소은이는 남들보다 마음이 더 여린 아이였고,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고, 격려받고 싶은 마음이 큰 아이였다. 엄마에게 응원을 받고 싶었는데 받지 못했고, 엄마가 응원은커녕 자기를 지적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어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 아이의 마음을 몰라주고, 아이에게 야단을 친 것 같아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유난히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 아홉 살이 된 지금도 그 기질은 여전히 나를 어렵게 한다. 예민한 아이 육아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지만, 나는 아직도 육아가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지치지 않기 위해 계속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힘든 순간마저도 너와 나의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이니까.


관장님이 보내 주신 단체사진 속에서 혼자 울고 있는 소은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날은 마음이 아팠지만, 아주 먼 훗날에는 이 사진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몸도 마음도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태권도. 아이가 단단해지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소은이의 여린 마음도 수많은 시간과 경험을 지나 단단해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울기 전 행복했던 순간. 미리 사진을 찍어두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