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할아버지 신발 좀 사드려야겠어.

시아버지의 낡은 운동화

by 강진경

"엄마, 할아버지 신발 좀 사드려야겠어."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올라오신 날. 아이가 할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 후 살며시 현관에서 할아버지 신발을 들고 나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할아버지 신발이 너무 낡았어 엄마. 얼른 새 걸로 찾아 줘."


나는 아이 손에 들린 아버님의 신발을 보고 말했다.


"그러네, 엄마도 사실 아까 할아버지 신발 보고 이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낡았네."


"응,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리면 괜찮다고 하시니까 할아버지 몰래 말하는 거야."


그러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아이.


초등학교 2학년이 어쩜 이렇게 생각이 깊을까. 아이는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행동까지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다음날 아버님과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아버님 뒤에 서있던 나는 아버님의 낡은 신발을 보고 무심결에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아버님, 신발이 너무 낡았어요. 이 신발 편하셔요? 같은 걸로 하나 새로 사드릴게요."


그러자 아버님은 소은이가 예상한 대로 손사래를 치시며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괜찮다. 괜히 새로 사지 마라. 절대 사지 마라!"


예전 같으면 나도 '네'하고 대답했겠지만 이번엔 나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에요, 아버님. 소은이가 할아버지 신발 너무 낡았다고 저더러 사드리라고 했어요. 제가 봐도 뒤창이 많이 닳아서 발 아프실 것 같아요."


그러자 아버님은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워낙에 검소함이 몸에 밴 분들이고, 당신들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 거의 없으셨다. 아주 오래전 사드린 티셔츠 한 벌을 색이 바랠 때까지 입으시고, 겨울에는 남편이 안 입는 헌 패딩을 보내달라고 하여 입으셨던 시아버님.


어느 날은 시댁에 가니 어머님께서 남편이 10대 때 입던 학교 체육복 티셔츠를 입고 계시기도 했으며, 안방에 놓인 빛바랜 시계는 어머님이 수십 년 전 퇴사했던 회사의 로고가 찍혀있었다. 시계뿐이 아니었다. '새마을금고' 다섯 글자가 새겨진 플라스틱 비눗갑, 구멍이 송송 뚫린 낡은 수건, 아주 오래되어 윙윙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만 뜨거운 바람은 잘 나오는 헤어드라이기까지. 집 안은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했지만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 어머님이 키우시는 화초들은 어머님이 얼마나 부지런한 분인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두 분께는 값비싼 옷도, 근사한 명품도 필요하지 않았기에 하물며 신발 한 켤레도 자식들에게 사달라고 하실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한 번쯤은 못 이기는 척 자식들에게 필요한 걸 사달라고 하실 법도 한데, 결코 그런 적이 없 시부모님. 오죽하면 소은이도 그걸 알고 할아버지 몰래 신발을 사드리라고 했을까.


그래서일까, 나는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아버님께 신발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버님 몰래 신발의 사이즈를 확인하고 같은 모델이 시중에 나와있는지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아버님이 신고 계신 신발은 오래전 이미 단종이 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아버님을 모시고 백화점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에 스쳤지만 아버님께서 과연 순순히 허락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은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할아버지가 신발을 쉽게 받지 않으실 거라는 걸. 이번 주말, 아버님을 모시고 신발을 사러 가야겠다. 아니면 소은이 말대로 아버님 몰래 비슷한 신발을 주문해서 현관에 놓아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