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확보하기 쉬운 위치로...
며칠전 친분이 깊은 지방 소재 대학교 교수님이 창업을 고민하시면서 내게 상담을 요청해 오셨다. 플랫폼 기술도 경쟁력이 있어 보였고, 이미 데이터를 상당히 확보한 파이프라인 후보도 있었다. 그리고 연구소장을 포함해서 연구 핵심 인력 확보와 관련해서도 본인이 postdoc으로 데리고 있는 좋은 인력이 있어서 벤처 합류를 설득하고 있고, 제약사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지인도 있어서 역시 합류를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본사와 연구소의 위치였다. 동료 교수님들의 창업 사례들을 예로 들어주시면서 본인 생각으로도 일단 그 지방에 벤처를 설립하고, 대학교의 실험실을 당분간 연구소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셨다. 그런데 이어지는 얘기 속에서 아까 언급했던 postdoc 인력은 그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뜻을 펼쳤고, 제약사 지인 역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서울에 벤처를 설립하는게 어떻겠냐고 조언했지만 본인은 망설이는 눈치였고, 최소한 기관투자가로부터 Series A 투자를 받기 전까지는 지방에서 벤처를 운영하다가 투자유치 이후에 서울로 옮기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그 경우에도 서울로 옮기는 시점에 원래 근무하던 경영지원팀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모두 짐을 싸들고 이사를 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탈하는 인력도 있을 거라고 하자, 교수님은 결국 서울에서 벤처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으셨다.
지방에 소재한다는 이유 만으로 인재 영입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비단 벤처 만이 아니다. 대학교의 경우에도 갓 부임한 친구 교수들이 부푼 마음으로 실험실을 열고 학생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왠만큼 실력이 있거나 학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한단계 위의 수도권, 그 위의 서울권 대학교 실험실로 가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부임 후 몇년간 교수 자신이 실험을 직접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벤처의 경우에는 제약사와 인재 영입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나도 연구원을 합류시키기 위해 매력적인 처우 뿐만 아니라 연구소 입지에 대해서도 강조하곤 했다. 즉, 국내 제약사 대부분의 연구소는 서울이나 수도권 보다는 경기 남부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터전을 잡고 있거나, 잡으려고 하는 인재의 니즈를 만족시켜주는 것도 좋은 전략이며, 때마침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구로/가산디지털단지, 송파구 문정동, 영등포, 판교 등에 지식산업센터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으므로 이를 적극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 회사도 본사와 연구소의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바이오연구실, 합성연구실의 세팅에 들어갔다. 바이오연구실의 이슈는 전기와 면적이었다. 연구실에 설치한 연구장비들에 공급할 충분한 전기가 확보될 수 있는 여건이어야 하며 UPS(무정전 전원 공급장치)가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만약 2개 호실을 계약했다면 1개 호실에 각각 할당된 전력량을 한곳에 몰아서 부족한 전력량을 해결할 수도 있다. 면적의 경우 바이오연구실을 1~2년간 운용하면서 그 한계가 서서히 드러났다. 초기 연구원 규모가 5~6명인 경우에는 30평의 어세이/세포배양 공간, 15평의 사무 공간, 15평의 동물실험실 공간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연구원 규모가 10명 정도로 늘어나자 금세 바이오연구실은 북적거렸고, 특히 어세이/세포배양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서 연구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행스럽게도 같은 층에 자리가 난 곳으로 추가 계약을 해서 확장하고 회의실을 늘였다. 만약 바이오연구실을 고민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 규모의 1.5~2배를 고려해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합성연구실의 이슈는 위치와 전기, 그리고 층고였다. 원래 계획은 서울에 바이오연구실과 합성연구실을 함께 두면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이었지만 곧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이들 물어보는 정부의 인허가, 즉 regulation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합성연구실에서는 냄새가 심한 유기용매와 합성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등으로 인해 탈취 유닛을 옥상에 설치해야 하고, 상당한 규모의 공조시설도 갖추어야 하는데 서울의 대부분 지식산업센터에서는 관리사무소 측에서 난색을 표하고 허락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물 자체가 별도의 공조시설을 갖출 만한 환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바이오벤처 합성연구실이 먼저 입주해 있으면서 위치와 전기 등의 측면에서 이미 검증이 된 송도 지역의 지식산업센터에 입주를 하고 원하는 시설도 다 갖출 수가 있었다. 층고의 경우 NMR 등 높이가 확보되어야만 설치가 가능한 장비 때문에라도 너무 낮은 곳은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시절을 기억해보면, 대학교 시절 항상 익숙하게 지내던 그 동네에서 계속 사는 것이 편하고 거기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었다. 벤처를 창업하면서도 은근히 그런 귀소본능이 영향을 미치고, 자신이 익숙하게 지내던 곳에서 시작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회사를 경영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은 인재의 영입과 관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이를 기준으로 본사와 연구소의 위치도 결정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