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 첫눈이 펑펑 오던 그날, 짐을 싸서 남편이랑 친정 엄마랑 병원에 내렸다. 홀로 남겨진 병실 안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고, 잠이 안 와 뒤적이는 이불 사이로 배를 만지작하면서 말했다. "첫째야, 너의 이름은 ㅇㅇㅇㅇ이야. 너무 멋지지 않니? 빨리 나와서 보고 싶다." 잠이 스르륵 든 지 한 시간이 채 안 돼 배를 누가 힘껏 차는 듯한 기분이 들어 "억!" 이러면서 깼고, 양수가 터졌다. 그렇게 첫째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수술 예정 시간보다 4시간 전에 태어났다. 아이는 앉은 자세로 있어서 다리가 아래 있어서 그랬나 보다. 발길 힘도 세었던 첫째는 지금까지도 뭘 차는 걸 좋아한다.
첫째의 생일이 올 때마다 그때를 떠올린다. 내 생일엔 친정 엄마도 내가 태어난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겠지? 역시나 다를까,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첫째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줘. 그리고 첫째 낳느라 수고했어." 이날의 출산을 기억하는 건 엄마뿐이다.
육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뮌헨에서 독일어로 열심히 찾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아이를 키운 기억이 떠오른다. 병원부터 서류 일들까지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이었고 남편은 독일어를 잘 못해 내가 다 준비했다. 힘껏 내 에너지를 써서 쌓아온 커리어에서 쉬고 싶을 때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고 여유롭나 싶지만 내 성격이 어디 갈까, 육아도 온 에너지를 써서 했다. 첫째라서 더 애틋했을까. 첫째가 태어나고 코로나 덕에 오랜 기간 동안 가정보육을 해서 그럴까. 엄마라면 다 그런 거겠지.
첫째의 4번째 생일은 학교 가는 날이었지만 그놈의 중이염이 걸려 못 가게 되었다. 사실 매 생일마다 아프다. 성장통일까 운이 없는 걸까 1월이라 그런가. 프랑스 1월엔 코로나 독감이며 온 가지 바이러스 박테리아가 돌고 있었다. 코로나 걸린 아버지가 첫째 같은 반 친구 하교하는 걸 보고 역시 프랑스군 싶었다. 다행히 코로나는 걸리지 않았다.
집에서 쉬는 덕에 아침에 먹고 갈 미역국은 점심에 먹고,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김밥을 준비해 주었다. 한창 무엇을 만들고 요리하고 먹고 싶어 하는 시기라 혼자 김밥 만드는 게 좋다고 한다. 고기는 저녁때 쓸 거리 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파리에서 사 온 부산어묵 1장이 남아 야채와 볶았다.
한국 문화가 정말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걸 체감한 게 우리 동네 근처 아시아 마트가 들어왔는 데 파리 근교지만 한국인이 없는 데 한국 식재료는 정말 많았다. 거기서 김밥김도 구매할 수 있었다.
첫째가 아프면 둘째도 이 따라 아프다. 아이들 약 먹이고 낮잠을 재우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이들과 남편 생일은 꼭 내가 케이크를 만드는 편이다. 고생을 왜 사서 하냐고 하겠지만 프랑스나 독일에는 홀케이크를 파는 곳이 별로 없다. 조각케이크를 파는 곳이 많고 홀케이크는 물론 주문도 가능하다. 근데 내 고집인지 내 추억인지 한국식 케이크가 먹고 싶어 매 생일엔 열심히 한국식 케이크를 만들어 본다. 전업 주부가 되기 전에는 만들어 본 적 없는 케이크를 만들면서 한 해 한 해 실력이 약간씩 늘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아이싱은 어렵다.
아이들이 깨고 나니 갑자기 저녁준비가 분주해진다. 아이들 잘 때 케이크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저녁은 최대한 간단하고 맛있어하는 걸 해보기로 했다. Blinis라고 팬케이크 종류인데 여기 위에 뭘 올리는 음식을 전식으로 많이 먹는다. 요구르트 1개로 계량할 수 있는 쉬운 블리니를 만들어 훈제연어랑 잠봉이랑 올려본다. 연어엔 역시 케이퍼지만 아직 첫째는 케이퍼 맛을 안 좋아한다.
본식으로는 이태리식 미트볼을 준비했는 데 이태리식 소시지와 소고기 간 걸 섞어서 양파 파슬리랑 섞어 오븐에 구웠더니 너무 촉촉하고 맛있었다. 거기에 집에서 만든 토마토소스와 폴렌타를 만들어 먹었다. 케이크를 디저트로 노래를 부르고 가족사진을 남겨본다.
독일 프랑스라는 곳에서 혼자 분주하게 아이를 키운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난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고 신나게 놀아주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서 놀고 세상을 탐험했다.
지금까지 아프지만 매번 잘 넘어가고 건강하게 자라준 첫째에게 고맙고 항상 얘기하지만, "첫째야 사랑해.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으로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