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반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요즘 나의 일상과 같은 느낌이다. 저 문장을 보고 영혼의 편지의 좋은 구절들을 필사하고 있는 요즘이다. 물론 내가 고흐는 아니겠지만 저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며 수채화를 이해하려는 그 당시 고흐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초중고 특활반은 고민도 없이 항상 미술부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크고 작은 미술대회에서 입상정도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께서 미대진학 생각이 있는지 여쭤보셨었고 사실 미대로 진학은 하고 싶지만 내 수준을 알기에 생각이 없다는 말로 둘러대고 그림은 또 꾸준히 그렸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잘하지는 않았고 남들보다 정말 아주 조금 잘했지만 특별하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전 은행에 취업을 하여 1년을 다니고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결국 시각디자인과에 입학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서양화 쪽이었지만 앞에도 말했듯 특별하거나 창의적이지는 않다. 입시미술을 따라갈 자신도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열심히 하는 나는 내신도 엉망진창이었다.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고 인쇄물을 창조해내는 시각디자인은 물감과 붓으로 그리는 순수미술과는 정말 달랐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 후 디자인 계열로 취업을 시도했지만 은행에서 받던 월급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고 나에게는 현실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은행의 경력을 살려 회계팀이나 인사팀, 대학교 행정을 담당하는 교직원으로 근무를 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엔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있어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돈 버는 일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기로 했다.
회사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 퇴근 후 화실을 찾았다. 처음 만난 선생님과는 스타일이 맞지 않아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다른 선생님을 만나 3년 동안을 화실을 찾았다. 그리고 모든 그림의 기본인 수채화를 다시 시작했다. 선생님도 나와 잘 맞았고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모임이 불가능해지고 여러 제약이 생기면서 잠시 쉬게 되고 그 뒤로 나는 회사까지 퇴사하는 바람에 지역이 멀어졌지만 다시 선생님이 계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항상 캔버스에 수채화를 그리다가 어느 날 선생님께 그림에 비해 캔버스가 너무 아까워서 스케치북에 그리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 나의 성격상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나를 너무 잘 아셨다ㅋㅋ
게다가 선생님! 저 완성했어요 하면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듬어주셨다. 완성도 하지 않고 완성했다고 그림을 멈출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정말이지 나를 너무 잘 아시는 선생님이셨다. 조만간 선생님을 뵙고 멀어도 다시 그림을 그리러 다녀야겠다.
그리고 깨알 자랑이지만 처음 나간 공모전에서 입선도 아닌 특선을 받아서 어느 정도 열심히만 하면 그에 따른 보상도 오지 않을까. 상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림 하나하나씩을 완성해 내는 성취감이 목적이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을 뵙고 싶다. 이 글을 읽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뵙고 싶어요 선생님. 다시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 저는 조만간 찾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