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내 Dec 24. 2024

사라진 사람들  

칠레 산티아고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1973년 9월 11일 아침, 발파라이소발 무전이 국영 라디오 채널로 방송됐다. 
이는 육군 총사령관이었다가 전날 스스로 군사평의회 의장 자리에 오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전군에 내리는 쿠데타 개시 명령이었다.  


비가 내리기는커녕 화창하기만 했던 그 이른 봄날, 수도 산티아고의 보통 사람들이 제각기 일상을 꾸려 나가는 사이, 탱크와 화기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으로 들이닥쳤고 공중에서는 전투기가 위협 비행을 했다. 
투항하지 않으면 궁을 폭격하겠다는 수차례의 협박에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궁의 민간인들을 설득해 전부 내보낸 뒤 떠나기를 거부한 최측근 보좌진 몇 명과 남아 전투모를 쓰고 AK-47 소총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끝까지 궁을 지켰다.  

당시 쿠바 총리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이었다. 
 

쿠데타군이 궁을 완전히 장악하기까지는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국민이 참여한 민주적 투표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권의 수장이었던 아옌데 대통령은 국민들을 향해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유언으로 남기고 사살됐거나 자살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조국에 충성하려 노력했던 한 존엄한 인간으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되지는 말아 주십시오. 
저들에게 뿌리째 뽑혀선 안 됩니다. 
대신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 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으로 쓰디쓴 순간을 이겨 낼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히 나아갈 드넓은 거리가 열리게 될 것임을.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 연설을 끝으로 라디오방송은 중단됐고, 오후 6시에 피노체트는 군부가 전국을 장악했음을 선포했다.


칠레의 진실과 화해 국가위원회가 9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내놓은 1,800여 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1973~1990년 최소 35,000명이 직접적·물리적 피해를 입었다.  

그중 28,000명이 각종 고문을 당했으며, 2,279명이 사형에 처해졌고, 1,248명이 실종됐다. 

그 밖에도 미국 CIA가 지원한 '콘도르 작전'을 통해 정권에 반하는 정당인 사회운동가, 언론인, 학자 등 수많은 인사들이 소리 소문 없이 제거됐다. 
정부가 위험인물로 분류한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강제로 추방당하거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해외로 망명했으며, 정확히 파악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보통 사람이 각 지역의 고문시설에서 불법으로 구금되어 심문을 받았다.  


위원회에서는 "국가기관 또는 그러한 기관을 위해 일하는 자에 의해 체포된 후 실종, 살해 또는 고문치사한 경우 및 정치적인 이유로 민간인이 저지른 납치와 인명 살상 시도"만 조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고문 피해 생존자들의 숫자는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칠레 전역에 1,000곳이 넘는 고문 시설이 있었고, 약 5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산할 뿐이다.


구스만 감독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자개단추>(2015)는 칠레 남부 '불과 얼음의 땅'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벌어진 원주민 학살의 역사와 함께 피노체트 집권기에 고문치사를 당한 뒤 바다에 수장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죽음의 비행 vuelos de la muerte'이란, 시체를 실어 바다나 큰 강, 심지어 산악지대에 던져 버린 군 헬리콥터의 비행을 이르는 말이다.  

지역 사람들의 입을 통해 풍문으로 떠돌던 이 이야기는 30여 년이 지나서야 당시 이송을 담당했던 일부 공군 조종사들이 양심 고백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각지의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다 사망한 사람들의 몸에 30킬로그램에 달하는 철로를 묶은 뒤 비닐과 감자 포대로 감싸고 헬리콥터로 실어 가 공중에서 그대로 바다에 빠뜨렸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일부는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던져졌다.  


다큐에서는 그 수가 1,200~1,4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아옌데 정권에서 공산당 교육위원으로 활동한 마르타 우가르테는 그 당시에 확인된 첫 번째 희생자로, 산티아고에서 182킬로미터 떨어진 라바에나의 해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얼굴이 거의 붓지 않은 채로,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굳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의 사체 사진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인터뷰이로 출연한 인권운동가이자 시인인 라울 수리타는 이를 "이중 살인"이라고 표현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가족들이 그 시체조차 찾을 수 없도록 정권의 '적'으로 규정한 이들을 비밀리에 매장 또는 수장했다.  

'이중 살인'이란 말은 희생자의 목숨을 빼앗고 장례의 존엄마저 박탈했다는 의미지만, 나아가 희생자 가족들에게서 애도를 앗아 감으로써 희생자만이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미래와 영혼까지 파괴했다. 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물에도 기억이 있다면, 이 모든 일을 기억할 겁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물이 들려주는 실종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실종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2004년 진행한 발굴 작업에서 철로에 박힌 채로 발견된 어느 '자개단추'는 한 사람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진실과 화해 국가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강제 실종'을 군부정권이 벌인 특별히 악랄하고도 특징적인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남은 가족들에게 희생자의 죽음을 알리지 않거나 심지어는 살아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만나게 해 준다며 돈을 요구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가족들은 평생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데사파레시도스desaparecidos, 즉 '실종자들'은 칠레를 포함해 남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집권한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납치되거나 구금된 뒤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