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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Dec 25. 2024

예기치 못한 아내의 파업

100세 시대 노후준비

2024년 12월 24일, 오늘은 성스럽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이브다.

이 즐거운 날 나에게는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아내가 파업에 들어간 지 이틀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3일 저녁 시간 TV를 보던 나에게 아내는 저녁 메뉴로 짜파게티를 선택했고 내가 흔쾌히 동의하자 그 임무를 나에게 맡겼다.  

즉시 행동에 옮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의 말이 떨어지고도 개겼다.
 

보통 이러면 ‘아휴 저 게으른 인간을 시키느니 내가 하고 말지’라며 아내가 나서는데 오늘은 달랐다.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는 반려견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예기치 못한 생황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 이틀 사이에 몸무게 1kg나 늘었는데 단식으로 몸무게를 줄여야지’
저녁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배가 고파 일찍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과일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아내는 집을 나간다.

24시간을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이제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햄버거라도 먹으려 나가려다 마음을 바꾸어 라면을 끓여 점심을 막는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집을 나선다.

먼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남포동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자갈치에 내리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운다.
다정란 청춘 남녀가 지나가고 어린아이들의 알록달록한 풍선을 들고 행복해 하지만 나만 혼자다.

거리에 가득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며 깡통시장 근처 <종로 빈대떡>에 들어서니 혼자인지 묻고 구석자리를 내어준다.  

해산물 빈대떡에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하니 금방 구운 고소한 빈대떡이 테이블 위에 놓인다.
반 병이 주량이지만 시장기에 맛있는 안주까지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운다.

온몸에 술기운을 느끼며 어둠이 내린 골목을 벗어나니 대로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요란하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 광장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지나다니기가 어렵고 경찰과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통행을 유도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모여 선 길가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사랑의 버스킹>이라 적힌 탁자 위에는 모금함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다가가 돈을 넣는데 대부분이 만 원권이다.  

검은 털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가수는 50대가 넘어 보였고 옆에서 색소폰을 부는 연주자는 하얀 머리카락에 60은 넘어 보였지만 노래와 연주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올드 팝송 <You mean everything to me>, <빌리 진>등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고 강변 가요제와 대학 가요제 노래로 분위기를 끌어올리자 떼창이 울려 퍼진다.

<꿈의 대화>, <바다에 누워>, <불놀이야>, <나 어떡해> 버스킹이 아니라 아이돌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 모금함을 찾는 손길이 잦아졌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민들은 행복해 보인다.  

9시가 넘은 시간 근처 커피숍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시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버스 정류장에는 마침 버스가 정차해 있다.
잽싸게 올라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앉을자리가 없다.
 
몇 정거장을 지나 앞에 앉은 젊은 여자 승객이 내리면서 앞쪽에 있는 나이 든 남자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거리 상으로는 내가 반 걸음 가까운데 눈치가 보여 과감하게 “앉으시죠.” 라며 양보의 뜻을 비치자 미안해하며 자리에 앉는다.    


11시가 넘어 도착한 아파트 앞 정류장 남포동 거리와는 달리 조용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 불은 꺼져 있고 반려견들이 찢기 시작한다.
옷을 갈아입고 내일 아침 아내가 일어나면 볼 수 있게 선물로 구입한 목도리와 모자를 탁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이 선물이 아내의 마음을 돌려주길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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