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탱고와 질 좋고 저렴한 소고기가 먼저 연상되는 아르헨티나는 와인에 진심인 나라다.
2023년 기준, 아르헨티나는 세계 9위의 와인 생산국이자 7위의 포도 재배 면적을 자랑한다.
아르헨티나가 와인 산업에서 지금까지 쌓아 올린 업적은 말벡이라는 적포도 품종 하나에 집중되는데,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량의 70%, 수출량의 90%를 차지하는 멘도사라는 생산지까지 알고 나면 아르헨티나 와인의 주요 키워드를 거의 정복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말벡은 현재 아르헨티나, 그중에서도 멘도사와 더 자주 연결 지어지는 포도 품종이지만, 본래 프랑스 보르도가 고향이다.
프랑스 보르도에서는 블렌딩에 쓰이며 조연 역할을 맡던 말벡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단독 주연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말벡을 재배하는 데 이상적인 기후와 고도, 토양 덕분에 고유의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 익은 과일 향에 단단한 구조감, 부드러운 감촉과 강렬한 터치라는 화려한 매력을 발산하며 아르헨티나의 대표 와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아르헨티나 와인의 부상을 알렸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벡이 아르헨티나에 유입된 날인 4월 17일을 말벡 월드데이로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와인이 자국 내에서 소비됐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와인의 국제무대 데뷔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스페인이 남미 대륙을 점령하고 곳곳을 식민지화시키는 시기에 아르헨티나도 그 대상 중 하나였고, 이때 포도 재배가 최초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1556년 후안 세드론 신부가 칠레의 센트럴 밸리에서 재배되던 포도묘목을 꺾어 안데스 산맥을 넘었고, 지금의 산 후안과 멘도사 지역에 아르헨티나 최초의 포도밭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멘도사에 포도 재배가 확장된 것은 1560년대다.
어째서 넓은 아르헨티나 땅에서도 척박하고 건조하기로 유명한 멘도사 일대에 포도 재배가 번성하게 했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건조하고 척박한 땅은 포도나무 질병이 창궐하기 어려워서 안정적인 포도 재배가 보장된다.
이런 건조한 환경은 포도밭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기에 이상적이다.
둘째, 안데스 산맥의 깨끗한 물 덕분이다.
포도나무는 메마른 땅에서도 자랄 수 있는 강인한 식물이지만 그래도 생명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물이 필요하다.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아 만들어진 순수하고 깨끗한 물은 포도나무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신이 주신 축복이나 다름없다.
셋째는 높은 고도다. 설산이 조망되는 높은 고도의 포도밭은 뜨거운 낮과 서늘한 밤의 극단적인 일교차를 겪어내며, 자연스럽게 당분과 산이 고루 분포된 밸런스 좋은 포도열매를 맺는다.
아르헨티나는 안데스 산맥 기슭을 중심으로 넓디넓은 포도밭에서 다채로운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앞서 말한 재배량 1위인 말벡은 아르헨티나에서 재배하는 포도나무 다섯 그루 중 하나일 정도다. 먼 과거에는 프랑스에서도 널리 재배되었으나 전 세계 포도밭을 초토화시켰던 필록세라와 1956년 기록에 남을 혹독한 봄 서리 이후 재배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비운의 품종이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보르도 남부의 카오르 정도만이 주목할 만한 말벡 재배지로 남아 있다.
프랑스 말벡 와인과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은 같은 품종임에도 재배지의 기후와 토양, 고도의 차이 덕분에 현저히 다른 캐릭터의 와인으로 탄생한다.
프랑스의 카오르산 말벡 와인은 검은 자두, 블랙베리, 담배와 같은 다소 드라이하고 다크 한 플레이버가 특징적이다.
입에서도 육중하다기보다 섬세하고 우아하며, 질감이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
아르헨티나 말벡은 더 강한 스타일로 잉크를 연상시키는 진한 색, 폭발적인 과실 향, 초원을 연상시키는 가죽 풍미, 입안을 꽉 채우는 타닌까지 강렬한 캐릭터를 보인다.
마치 열정적으로 탱고를 추는 댄서가 연상되는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