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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상성’ 배우기 2

사회적 ‘정상성’에 대한 압박은 외모와 행동에 관한 제약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부 모와 올바로 걷고 앉는 연습을 주기적으로 하였고, 이러한 교육은 현재까지 영향을 주어 그녀가 주위 사람들이 똑바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또한, 그녀는 사회 에서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은 상황과 모습을 갖추도록 요구받았다. 김수현은 이것을 부모의 사랑 이라고 여기지만, 동시에 그녀가 자신의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베를린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수업을 집중해서 듣거나, 열심히 공부했던 적 이 없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공책에 낙서하거나, 창문 밖을 바라보거나, 언제나 그냥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잘 대해 주었지만, 내 질병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했고, 엄마는 내 담임 선생님, 체육 선생님, 미술 선생님, 음악 선생님들을 찾아 가 어려운 부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소풍을 가는데 선생님들에게 무엇인가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엄마는 전화를 끊고, 아빠에게 학교에서 돈을 달라는 이야기인데, 아빠가 국립대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것 이 마음에 걸리지만, 돈을 주고 싶다고, 주어야겠다고 절대 반대하지 말라고 했다. 글쎄, 나는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엄마가 부끄럽지 않다. 아픈 아이가 있던 나의 엄마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어쩔수

없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20년이 훌쩍   넘어 이것에 대해 아빠에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아빠는,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있고, 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했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나는 결국 계단에서 넘어져서 크게 다치게 되었다. 엄마는 응급실에서 여자아이니까 다리 상처를 예쁘게 수술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다녔고, 오는 사람마다 다리에 흉터가 크게 남지 않도록 잘   꿰매는 의사로 수술실에 넣어달라 고 했다. 의사들은 엄마에게 아이가 못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리는 지금 너무 걱정하고 있는데, 대체 어머니 무슨   소리 하시냐고 짜증을 냈다. 수술한 내   다리는 엉망진창이어서 나는 몇  년간 내 다리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퇴원하고, 아빠는 교장 선생님께   화를 내지 않았고, 엄마도 교육부에 학교 탓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는 우리 가족들에게 정말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학교에서 나가주기를 원했다.아빠는 나를 다시 미국에 있는 카톨릭대학에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학기가 달랐던

한국의 어느   작은 대학에서도 졸업장을 받기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아빠는 아무 이유 없이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볼 것 이라고 했다. 그래서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이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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