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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함께 변화하는 삶.

노마드 부부가 겪고 있는 생각 보따리.

by Sun

어디에서 살지를 정할 수 있고,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코로나전부터 이런 삶을 시도했고, 그 이후로도 쭉 이렇게 꿈꾸고 그려온 대로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대열에 동참한 나의 인생 파트너 덕에 우리는 지난 10년 간 여러 곳을 일하면서 여행했다.


그러나 그 노마드도 종착점이라는 것은 있어 보였다. 점점 여행하고 겪는 사소한 문제들이 적잖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특히 노마드가 일할 때 가장 필요한 인터넷과 일하기 좋은 작업환경이 항상 불안 요소였다. 그렇게 마르세유에 집을 턱 하니 샀고, 베를린과 마르세유를 오가며 지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생긴 아가.


우리도 정착이란 것을 해야 한다. 아기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에게 노마드는 당분간 맞지 않았다. 한 달은 베를린, 한 달은 마르세유, 또 한 달은 갑자기 칸쿤, 파리, 서울 등등이 될 수는 없으니까.



지난 주말, 브런치를 먹으러 간 날 하필 장소가 그래서인지 그날은 유난히 커플들보다 여자친구들끼리 몰려와서 브런치를 먹고 수다를 떠는 그룹들이 눈에 유독 띄었다.


내가 프랑스로 오게 된다면 잘 없을 일이겠지. 한국 떠나고 여자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시절이 언제 적인가 싶다. 물론 한국에 살아도 다들 바쁘니까 1년에 몇 번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막상 언젠가는 살러온다고 생각하니 이전보다는 확실히 눈에 밟히는 것과 머리에 드는 잡생각이 많았다. 교통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지하철은 왜 이렇게 짧고 발달도 안되어있고, 집 앞은 개발한다는데 대체 어느 세월에.


햇빛 쨍쨍한 날씨에 정신이 팔려 마르세유를 너무 좋게만 봤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 육아에 지쳐 기운 빠진 나를 이끌고 플로가 맥주를 마시잔다. 점심시간을 늘리고 밤에 일하기로 업무시간을 조정해 놓았단다.


그리고 역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중하게 이야기를 터놓을 상대, 맥주 한잔, 그리고 쨍쨍 내리쬐는 2월의 햇살. 그게 다였다. 물론 그 상대가 아직은 플로뿐인지라 그게 문제라면 문제. 그 와중에 내 비위 맞추느라 너도 수고가 많다. 그냥 나는 1년간의 육아휴직을 통해 일은 하면서 살아야겠구나 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 옷이나 레아 옷이나 햇빛 냄새가 솔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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