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주도민, 유학 가다

기본소득이 좋아서 시작한 서울살이 1년

2020년 1월, 제주에 살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으로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이 생겼다는 기사를 봤다. 보통은 민주, 국민, 정의 등 가치지향적인 정당 이름을 쓰기 마련인데 기본소득을 당명으로 하는 정당이라니! 평등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다 마침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접하게 된 시점이라,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SNS로 창당 과정을 검색해보니 50대가 아닌 1030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 되어 운영해왔다는데, 그 점도 놀라웠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 마음을 누르고, 의문을 가득 담아 메일을 보냈다. 국회의원 선거 기간이었는데도 5일 만에 답이 왔다. 나는 메일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서울에 위치한 당 사무실에 방문할 날짜를 잡았다. 당시 사무총장님을 만나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소득당의 기본소득 실현 의지에 대해 자세하게 들으면서 기본소득당에 대한 나의 궁금함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기본소득당에 무턱대고 보냈던 첫 메일의 앞부분 캡처 화면.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느꼈던 설렘과 나의 오래된 고민들을 풀어 긴 글을 썼었다.


총선이 끝나고 당대표님과 사무총장님이 전국 순회 일정으로 제주에 와서 하는 지역 유세를 들었다. 기본소득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고 기본소득당 사람들과 함께 당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순간이었다. 당장 서울에 가서 1~2년 동안 기본소득을,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활동을 배워야겠다! 일종의 유학이었다.


막상 마음을 먹고도 30년이 넘는 시간을 제주에서 살아서인지 서울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 기대가 되면서도 겁이 났다. 자주 보던 가족, 친구, 후배들도 서울 가면 자주 못 보니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신경 쓸 게 많은 서울살이는 외로울 틈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첫 자취생활을 해나갈 집을 알아보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좁지만 풀옵션이 있는 원룸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옵션이 없더라도 투룸을 구할 것인가. 그야말로 난제였다. 여러 고민 끝에 비좁아도 세탁기 있고 너무 더운 날엔 에어컨도 틀 수 있는 풀옵션 원룸을 선택, 관악구 신림동이 나의 집이 되었다. (두둥!)


지금의 집이 된 신림동 원룸


어느덧 자취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집만 구하면 되겠지 했는데 컴퓨터도 사고, 밥솥도 구하고, 매트리스, 각종 생필품까지 살림이 좀 늘었다. 여전히 지하철 출퇴근길은 힘들다. 제주에서는 1시간이면 웬만한 곳을 다닐 수 있고 앉아서 여유 있게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괜히 ‘지옥철’이 아닌 것 같다. (휴.. 특히 출근길 9호선은..) 제주에서는 조금 높은 동산만 올라도 보이던 바다도 못 봐서 아쉽고 부모님도 보고 싶다. 늘 익숙하게 지내던 공간, 자주 봐서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들이 서울살이 1년 만에 새삼스럽다.


그래도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 기본소득당 활동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기본소득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최근에는 기본소득정치세미나를 통해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기본소득 vs. 기본자산’ 토론도 진행해보면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탄탄하게 마련하고 있다. 또,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자주는 못 가지만 연극이나 야구 관람 같이 제주에서는 자주 못하던 문화생활도 주말에 시간을 내면 즐길 수 있어 나름대로 삶의 힐링 요소가 되기도 한다.     


지난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기본소득당 신지혜 대표님이 출마했고, 나도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불광천에서 주말 집중유세를 하던 중 찍은 사진.


기본소득이 좋아서 시작한 서울살이 1년. 정당 활동을 하며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함께 치르고, 이제는 서울시당에서 본격적으로 당 업무를 맡고 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잘 적응해 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제주도 토박이가 복잡한 서울 생활에 적응하려고 하니 때론 답답함도 느끼지만 서울에서든 제주에서든 기본소득당과 앞으로도 좋은 활동과 추억을 쌓아가고 싶다.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탬이 되고 싶다.



현치훈|서울 기본소득당 사무처장
기본소득당 활동과 기본소득을 공부하고 싶어 제주에서 서울로 유학 옴. 기본소득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내 삶에서 실천해보기. 지금 이 순간 내 삶을 즐겨보자.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의 권리가 있듯이,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을 함께 이뤄낼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정당에도 회계담당자가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