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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될거없잖아, 선거 디자인

[인터뷰] 서울시장 선거 벽보 디자이너를 만나다

석가탄신일이었던 5월 19일, 기본소득당은 홍대입구역 근처의 한 강의실에서 서울·경기·인천 당원 간담회를 열었다. 이 날 감사장을 받은 주인공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일등공신이었던 디자이너 오 비서님이었다. 그가 노션에 빼곡히 남겨준 선거 후기가 떠올랐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 했던 5월 21일 국회 앞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아래는 우리가 나눈 대화이다.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신지혜 후보의 벽보와 공보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홍보물을 디자인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들을 하셨나요?


 : 선거 슬로건을 만드는 단계부터 참여를 했어요. 올해 1월부터였는데, 이때는 공약이 확정되기 전이라 컨셉을 정하는 데 많이 헤맸어요. 신지혜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할 때 저는 용혜인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보를 알고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거든요. 대화를 나눠보니까 신지혜 후보도 몇 차례 출마 경험이 있는 정치인이지만 서울시장 선거처럼 큰 선거는 처음이었고, 저도 그랬죠. 어떤 이미지로 신지혜라는 사람을 드러낼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컨셉이 정해지고 나서 벽보, 공보, 현수막, 명함, 선거운동복 등 전반적으로 디자인을 맡았고요. 그 외에도 인쇄되어 나오는 홍보물이라든지 선거 도중에 필요한 웹자보도 디자인했고, 유세발언 영상 편집도 했어요. 실제 선거운동도 참여했는데 제가 체력이 약하다는 걸 느꼈어요. (웃음)


선거, 어떻게 말을 걸까

기본소득당이 디자인 제일 잘했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도 만족하시는지, 소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벽보와 공보 디자인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기본소득당 기호6번 서울시장 후보 신지혜의 6p짜리 공보 단면


 : 선거가 끝나고 다른 디자이너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이번 선거에서는 보다 다양한 후보자 선전물이 나왔다는 평을 들었어요. 한 명의 후보를 책임진 디자이너로서 기분이 좋아지는 반응이더라고요. 유권자들에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좀더 다양한 정치인의 상을 보여준 데서 뿌듯함을 느껴요.


그리고 우리가 공보에 ‘기본소득 서울시장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고 크게 박아놨었는데, 이게 집집마다 발송되고 또 페미니즘 문구가 많이 쓰였던 현수막도 곳곳에 걸렸잖아요. 페미니즘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모두에게 말을 걸었다는 게 좋았어요.

 

근데 벽보라는 게 여러 버전으로 못하고 딱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거라서 아주 미묘하게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진 작가님은 제 의도를 간파해서 잘 찍어주셨는데, 만들면서 저의 역량 부족을 느꼈거든요. 실제 후보와 선거운동을 해보면 무표정인 벽보와 달리 자주 웃는 이미지라, 갭을 느끼는 어르신 유권자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후보의 인간적인 모습을 살려 더 담아냈어야 했나? 싶기도 한 거죠.


기특하지도, 장난스럽지도 않은

그래도 저는 무표정 사진이 참 좋았는데...! 벽보 사진 촬영부터 본격적인 디자인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하셨나요?


 : 두 가지 키워드가 있었어요. ‘당찬’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우선 저는 신지혜 후보를 당차게 그리려고 했어요.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으로서, 나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 정치인의 모습으로요. 또 후보가 기후위기, 데이터 주권 등 미래 세대에게 중요한 문제를 공약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대변자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했어요. 그에 따라 어깨 딱 펴고, 진지하게 좀더 먼 곳을 내다보는 모습으로 후보 사진을 찍고 벽보로 쓰게 됐죠. 

타임지의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표지사진. 출처: The Times

처음엔 타임지나 포브스지 표지에 나오는 여성 CEO나 정치인 사진을 참고하다가, 연령대가 맞지 않아서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와 그레타 툰베리 환경운동가의 화보나 기사 사진을 찾아보게 됐어요. 특히 툰베리는 모든 사진에서 웃지 않더라고요. 청소년이 그저 ‘좋은 일’ 하는 거라는 이미지를 만들지 않으려는 셀프 브랜딩으로 느껴졌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특하기만 한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활짝 웃지 않기로 결정하게 됐죠. “안될거없잖아, 서울기본소득”이라는 슬로건이 활짝 웃는 표정과 함께 걸렸을 때 장난스러워 보일 것도 고려했고요. 결과적으로 살짝 웃는 게 있고 안 웃는 게 있었는데, 공보는 전자, 벽보는 후자로 나갔어요.


또 저희 벽보가 상대적으로 슬로건이 강조된 편이었어요. 공보 첫 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문구에도 기본소득페미니즘이라는 두 아젠다가 떡하니 강조되었고요. 일단 기본소득당이 2020년에 새롭게 생긴 정당이라 대체 뭘 주장하는지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어요. 그걸 위해 가급적 노이즈 없이,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죠. 


벽보에서 신지혜는 진지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안될거없잖아, 서울기본소득”이라고 말해요. 말풍선 속에 슬로건이 담긴 모양인데, 미국 AOC의원의 첫 출마 포스터를 참고한 측면이 하나 있고요. 나머지 하나는, 기본소득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의미하지는 않잖아요. 가령 돈 모양 아이콘을 그린다고 해서 그게 기본소득이 가져오는 다양한 삶의 변화 전부를 나타내지는 못하겠죠.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이 이미지로 표현하기 좀 까다로운 소재인데, 말풍선은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 같은 거니까, 기본소득이라는 내용을 담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탄생비화를 들으니까 더 멋져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당 컬러가 민트색인데 인쇄 업체마다 (수치상으로는) 같은 색인데도 눈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색이 찍혀나와서 난감했어요. 균질하게 보이기 참 쉽지 않은 색이었죠. 그래도 실제로 선거운동을 해 보니 저희 운동원들이 아무래도 밀레니얼 세대 중심이다 보니까 민트색이 잘 받더라고요. 신지혜 선거운동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푸릇푸릇하고 산뜻해보여서 좋았어요.(웃음) 그리고 양 옆에 또 붉은 색을 쓴 후보들이 있었잖아요. 첫 날 유세현장에 갔는데 다 불긋불긋한 느낌인 거예요. 막 우리가 상대적으로 튀어보일 수 있겠어! 하고 좋아했죠. 처음엔 민트색 쓰기 힘들어서 회의적이었는데, 선거 치르고 나니까 우리 계속 민트 써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벽보가 붙어 있는 아파트 단지의 모습. 2번과 7번 후보 사이에 6번 신지혜 후보가 있다.


어긋남 없고, 아깝지 않은 디자인

선거 경험은 디자이너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혹시 다음에 또 선거 디자인을 할 기회가 생기면 응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 그저께 당원 간담회에서도 우리가 가진 총력을 다 썼는데 5위라는 성적표를 받은 거에 대해 아쉽다고 후보님이 말씀을 하셨잖아요. 저도 그 부분이 좀 아쉽고요. 좀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다음에 또 선거 디자인을 할 기회가 생기면 더 능숙하게 할 수 있겠죠? 


사실 제가 지금 이직 중인데, 국회에서 일하는 경우 정당을 뛰어넘어서 일자리를 옮기기도 하거든요.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전문성을 기반으로 옮겨가는 분들이 있는 거죠. 저는 이번 선거에서 제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그냥 주어진 일을 한 게 아니라, 이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이나 공약에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 상태에서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가치관과 어긋남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좋았어요.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얻게 된 친근감, 좋은 관계 같은 것들을 계속 가지고 나가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가 만약 전혀 다른 정치성향의 후보자 선전물을 디자인한다면 그런 면에서 고민이 되겠죠. 천문학적인 돈을 준다면 몰라도. (웃음) 적당히 주는데 내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구축해온 네트워크 같은 것들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이잖아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려요.

 : 우리가 원한 만큼의 결과를 취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다른 전략을 쓸 것인가, 앞으로는 뭘 할 것인가가 계속 고민인 것 같아요. 그래도 15%나 회색지대에 투표한 20대 여성에 제가 속해 있으니까,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예전에는 제3의 후보에게 투표하면 사표 된다고 협박성으로 선거운동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확실히 우리 세댄 좀 다른 것 같아요. 당선은 안 됐어도 내가 던진 표가 아깝지는 않더라고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Edited by 온라인사업팀 서영 PD

Photo/Image by 기본소득당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의 권리가 있듯이,

“당신이 누구든” 기본소득당은 기본소득을 함께 이뤄낼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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